하지만 13명의 대법관 중 6명은 사실상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다면 파탄 책임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파탄주의)는 입장을 밝혀 향후 대법원이 파탄주의로 돌아설 가능성을 보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다른 여성과 가정을 꾸린 남편 A씨가 “혼인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며 아내 B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대법관 7대6 의견으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중 7명은 “혼인생활을 파탄시킨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시 약자에 해당하는 여성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청구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 등 6명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번 사건에서는 가정을 파탄시킨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기존의 ‘유책주의’를 유지할지, 아니면 해외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파탄주의’로 전환할지에 대해 첨예한 공방이 이뤄졌다.
유책주의는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파탄주의는 ‘가정이 회복 불가능한 파탄에 이르렀다면 양쪽 모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유책 배우자도 성실한 협의를 통해 협의이혼을 할 수 있으며, 파탄주의를 취하는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는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3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간통죄가 폐지된 상황에 파탄주의까지 적용하면 중혼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가치관이 변화하고 여성의 지위가 향상됐지만 모든 영역에서 만족할 만큼의 양성평등이 이뤄졌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파탄주의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사건 당사자인 A씨는 1976년 B씨와 결혼한 뒤 1998년 다른 여성과 사이에서 혼외자를 낳고, 2000년부터는 집을 나와 이 여성과 동거했다. A씨는 2011년 B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결혼생활 파탄의 책임이 있는 A씨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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