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실효환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수출 경쟁력이 약해졌다는 뜻이다.
원화 가치가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이처럼 높아진 것으로 나오면서 미국이 계속해서 한국에 대해 '환율 조작'을 문제 삼고 나서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원화가치 5년간 38개국 중 6번째로 많이 올라
21일 국제결제은행(BIS)의 월간 실질실효환율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곳과 브라질과 인도, 중국, 러시아 등 4개국 가운데 실질실효환율이 6번째로 높았다.
실질실효환율은 각국의 물가와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 대비 자국 통화의 대외 가치를 측정하는 데 이용되는 것으로 기준점 대비 환율이 높아지면 통화의 구매력은 커졌지만, 수출경쟁력은 낮아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BIS가 매달 발표하는 실질실효환율은 2010년 100을 기준으로, 61개 국가의 통화가치를 반영해 산출한다.
한국의 9월 실질실효환율은 108.33으로 2014년 3월(107.89) 이후 1년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38개국 가운데 8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의 실질실효환율이 기준점 아래로 떨어졌다.
대신경제연구소의 홍석찬 연구원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 절상폭이 컸던 것에 대해 "(한국이) 일본과 미국, 유럽과 교역 비중이 높은데, 이런 부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 "여타 국가의 적극적 통화완화로 한국 원화의 절하폭이 적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한국) 수출 품목의 가격 경쟁력이 저하됐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3분기를 기준으로 봤을 때도 추세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원화는 109.33을 나타냈다.
◇ 중국·영국·미국 절상폭 두드러졌다
한국보다 절상폭이 높은 곳은 중국과 아이슬란드, 미국, 영국, 스위스뿐이었다.
특히 중국은 130.94까지 올라 실질실효환율 절상폭이 가장 컸다.
미국(114.05)과 영국(117.13)은 경제성장률이 양호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실제로 명목 통화가치 절상폭이 컸다.
아이슬란드는 물가 상승과 성장률 호조로 올해 이미 두 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린 바 있어 크로나화가 달러화와 유로화에 대해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스위스 통화인 스위스프랑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유로와 엔화가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으로 절하되는 사이 강세를 나타냈다.
유로화와 엔화의 9월 실질실효환율은 각각 92.43, 72.59를 나타냈다.
실질실효환율이 가장 많이 떨어진 국가는 신흥국 위기 때마다 거론되는 브라질(64.18), 터키(77.09) 등이었다.
원자재 가격 폭락의 여파도 실질실효환율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경기침체를 나타낸 원자재 부국 캐나다도 80.97까지 하락했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노르웨이의 크로네는 83.45를 나타냈다.
중국발 수요 둔화의 직격탄을 맞은 철광석이 석탄 등이 풍부한 호주의 호주달러도 86.78로 절하폭이 두드러졌다.
◇ 한국 '환율 조작' 평가 부당한가
실질실효환율을 근거로 미국이 주장하는 한국의 환율조작은 부당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한국 원화는 15% 절상, 일본 엔화는 25% 절하됐다. 환율 조작은 말도 안 된다"면서 "(그럼에도) 일본 정책은 지지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한국의 국제금융 외교가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재무부는 19일(현지시간) 발표한 하반기 '국제 경제와 환율정책에 대한 의회 보고서'에서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양상이) 대략 균형 수준을 보였다"고 언급하면서 지난 4월에 외환시장 개입 중단을 압박한 것과 달리 비판 수위를 누그러뜨렸다.
그럼에도, 4월에 이어 "한국 당국이 외환 조작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은 그대로 뒀다.
송치영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 외환당국이 개입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환율을 조작한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면서도 미국의 이런 비판은 그동안 계속 이어져 왔다면서 큰 문제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외환시장 규모가 작아 투기가 일어날 수 있고, 수출입업체 등을 위해 환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고려할 때 외환당국의 '미세조정'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홍석찬 연구위원은 "올해 외환당국의 개입 강도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미국 재무부의 평가가 완화됐다면서 개입을 놓고 외환당국의 부담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전날 원/달러 환율은 1천131.0원으로 전일 종가보다 10.0원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3분기에 평균 1천169원을 기록했다.
홍석찬 연구원은 최근 환율이 많이 떨어지면서 단기 조정을 받았지만 4분기에는 1천175원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내년에는 1천200원선에 안착하며 원화는 장기적으로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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