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짐이 그를 정위에게 넘긴 까닭은 그놈의 집안까지 멸하도록 하려던 것이었소.”
이에 장석지는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형벌이란 경중을 가려 처리해야 합니다. 지금 종묘의 물건을 훔쳤다고 하여 그 집안을 멸한다면, 고조의 능인 장릉(長陵)의 흙을 한 움큼이라도 훔쳐가는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떤 법을 적용하시겠습니까?”
문제는 한참 생각하더니 장석지의 판결이 타당하다고 여겨 동의했다. 그렇다. 법은 무조건 ‘극형’만 적용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무질서와 방종을 부르는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중용’은 “양 극단을 잡아 그 중간을 백성에게 쓰라(執其兩端 用其中於民)”고 가르치고 있다. 순임금이 명군이 된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다. 치세나 배움, 법리 적용 등에서 양 극단을 이해하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신하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공직자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하겠다.
김수남 대검 차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새 총장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중립과 공정성이 요청된다. “법은 귀족에게 아첨하지 아니하고, 먹줄은 휘어지지 않는다.(法不阿貴 繩不撓曲)” 법 적용은 권력자에게 아부해서 안 되고, 목수는 굽은 나무라고 먹줄을 구부려 그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한비자’의 충고다. 법치는 적절한 변혁과 더불어 공명정대함이 생명이다.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소장
法不阿貴 : ‘법 적용은 권력자에게 아부해서 안 된다’는 뜻.
法 법 법, 不 아니 불, 阿 아첨할 아, 貴 귀할 귀
法 법 법, 不 아니 불, 阿 아첨할 아, 貴 귀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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