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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련한 선장, 폭풍우 속에서 진가 발휘한다

입력 : 2015-11-20 15:05:13 수정 : 2015-11-20 1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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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불황에 이은 끝모를 경기침체 등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노련한 선장은 폭풍우 속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경험이 많은 선장은 폭풍우 속에서 배가 침몰 위기에 처하면 짐을 바다로 던져버린다. 선체를 가볍게 만들어야 험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게가 많이 나가면서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은 짐을 먼저 바다에 던진다.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상은 조선·건설·석유화학 등 중후장대산업이다. 이들 업종은 전세계적인 경기 부진에다 공급 과잉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핵심자산 매각이나 합병 등을 통해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공멸을 자초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야 비로소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정부가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채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짐을 모두 건지려다가는 배가 송두리째 침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업계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되 그렇지 못한 경우 구조조정을 적극 권유할 방침이다. 그래서 일부 업종의 경우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불가피한 것으로 지적된다.

조선업종에서는 합병 주장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조선업계 '빅3'는 물론 중소형 조선업체들도 대대적인 합병을 통해 체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건설업에는 상당한 '좀비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 회복은 이들의 수명을 연장시켜주고 있지만 이들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는 없다. 영업이익으로 차입금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금융시장이 경색되면 즉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아울러 해외 사업으로 빚어진 부채 감촉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석유화학은 중국업체의 공급 확대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분야는 앞으로도 수년간 적자가 불가피한 만큼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필수 과제로 지적된다.

한편, 다른 대기업에는 있지만 삼성그룹 계열사에는 없는 게 딱 1가지 있다. 바로 대규모 희망퇴직 또는 구조조정 공지다. 보통 대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은 사내게시판 등을 통해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의 대상, 조건 등을 알린다.

실례로 ▲5년차 이상 부장 ▲기본급 30개월분 지급 ▲자녀학자금 지원 등의 조건이 그것이다. 삼성 계열사들은 임직원 모두에게 공개된 사내망에 이같은 공지를 올리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지난해 초 삼성생명에서 대규모 희망퇴직·전직을 공지한 적은 있지만 삼성 계열사로는 이례적이었다. '초일류'를 지향하는 삼성 입장에서 회사가 직원을 '내보낸다'는 사실은 뼈아프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조건을 공지하면 정작 회사에 남아야 할 핵심 인재가 엉뚱하게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삼성 계열사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인사팀 등에서 대상자를 선정해 조용히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정확한 퇴직 대상자, 규모 등이 알려지지 않는다. 삼성 내부에서 지난해부터 잇따라 사업구조 재편과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어느 계열사에서 수백여 명이 떠났다'라는 등 소문이 돌지만 내부에서조차 정확한 규모가 확인되지 않는 이유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하는 사업보고서와 분기보고서 등을 보면 어렴풋이나마 '삼성맨'이 얼마나 줄었는지 추측할 수 있다.

20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비롯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탄생한 통합 삼성물산 등 삼성 주요 계열사 13곳에서 적게는 수백여 명에서 많게는 1000명 이상이 최근 1년 새 회사를 떠났다.

소위 주력 계열사로 분류되는 곳에서만 전체의 2.5%가 넘는 5700명이 삼성 이름표를 떼내야 했다. 분기보고서에는 분기 말(신고일) 기준 재직자 현황이 나온다. 휴직자도 일부 포함되지만 상당 부분은 회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타의에 의해 옷을 벗은 이들이다.

가장 많은 동료가 떠나버린 곳은 스마트폰 사업 부진의 직격탄을 맞은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다.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임직원수는 지난해 3분기 기준 9만9556명에서 올 3분기 9만8557명으로 1000명 가량 줄었다. 삼성전자로부터 2012년 분사된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같은 기간 2만6938명에서 2만5599명으로 1400명 가량 감소했다.

2013년 3분기 삼성전자 IM부문은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넘었지만 2014년 1분기 8조4900억원, 2분기 7조1900억원에 이어 3분기 4조600억원으로 급감, 전체 실적 부진의 원인이 됐다. 이후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조직 및 인력을 재정비하면서 내실 강화에 주력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인력이 회사를 떠났다.

큰형인 삼성전자의 부진은 삼성전기와 삼성SDI 등 다른 전자계열사의 실적부진으로 이어졌다. 삼성전기가 1년새 814명, 삼성SDI가 687명의 인력을 줄였다.

삼성전기는 일부 사업의 분사로 DM(디지털모듈) 사업부문에서 제조인력과 연구·개발(R&D) 인력이 감소했다. 삼성SDI는 지난 7월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사업에서 발을 빼면서 2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9월 1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해 출범한 통합 삼성물산 역시 1년 새 600명 가량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상당부분이 옛 삼성물산 건설부문 인력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3분기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이라는 '어닝쇼크'를 경험한 삼성엔지니어링에서 1년 간 700명이 넘는 직원이 옷을 벗었고 ▲삼성SDS 214명 ▲삼성카드 141명 ▲삼성증권 56명 ▲삼성생명 51명 ▲제일기획 28명 등 주력 계열사 대부분이 1년 전에 비해 직원수가 감소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화재만 지난해 3분기에 비해 올해 3분기 기준 인력이 167명과 129명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구조조정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그룹은 내달 초 사장단 인사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인사와 조직개편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지원부서 인력의 현장 재배치와 조직슬림화에서 나아가 임원을 대규모 감축할 것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 통합 삼성물산은 건설과 지원부서 등 중복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중공업 역시 실적 부진에 따른 인력 감축이 예상된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 하에서 잇따른 빅딜과 사업재편을 진행한 만큼 전체 인력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 1위 기업집단으로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를 맞는 삼성의 변화에 재계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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