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작가 금희(본명 김금희?36)가 한국에서 ‘세상에 없는 나의 집’(창비)을 펴냈다.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힐 주목한 만한 소설집이다.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어느 중국 인물은 떠나고 돌아오고 또 떠나는 주변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누구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고 또 누군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관성처럼 떠난다지만 하루 세 끼조차 보장되지 않는 생존의 문제에 부닥치고보면 이 언사조차 무색해진다.
생존할 수는 있으나 ‘생계’를 위해 발버둥치는 존재의 자화상은 ‘월광무’에 전형적으로 등장한다.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국영기업에 취직해 가만히 있으면 생계는 해결되는 조건에 놓였던 ‘나’는 ‘반복되는 일상, 나아질 것 없는 인생, 기성세력의 독재, 생활의 중압감’을 못 이기고 뛰쳐나와 각종 자본주의적 사업을 벌였다. 때로 약간의 돈도 벌었지만 끊임없이 자본에 쫓기는 신세. 마지막 빚에 몰려 그가 무시했던, 시골에 정착한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중국 남쪽 끝 도시에서 동북의 시골마을까지 밤낮 쉬지 않고 사흘을 기차와 버스, 오토바이로 달려가는 과정이 이 단편의 얼개다. 국영기업에 가만히 있었으면 생계는 해결되는 것을, 그는 왜 떠났을까. 그의 아버지도 떠나는 삶을 살았던 이였다. 아버지는 죽기 전 수술대로 떠나면서 그에게 말했다.
조선족 작가 금희. 그는 “아직도 맨얼굴의 내 영혼과 조우하지 못한 느낌”이라면서 “중국에서 쓴 글들이 묶여 한국 독자들의 선택권 안에 들어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홀가분해진 것 같다”고 썼다. 창비 제공 |
떠났지만 한 번도 제대로 따나본 적 없다는 말은, 서러운 사랑이다. ‘노마드’의 박철이는 한국에서 노가다로 돈을 벌다가 중국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그는 “한 종족이되 이제는 도무지 한 무리에 어울려 살아갈 수 없는 야생 이리와 셰퍼드처럼, 같은 액체지만 한 용기에 부어놓아도 도무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박철이는 결코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한다. 그는 중국에 돌아왔지만 “그 끝이 자의든 아니든 다시 떠나는 길의 시작”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도끼’에서 고향을 떠나는 화자는 원시시대 돌도끼 형상을 주워들고 “시간의 낫질처럼 무정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라고 되뇐다. ‘시간의 낫질’처럼 한국 작가들이 잊어버렸거나 놓친 어휘들이 간간이 등장하는 것도 이 소설집 매력이다. 이 인물은 돌도끼에서 “허기를 채우기 위해 겪었을 당시 사람들의 절박함과 함께 예상외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면서 “어쩌면 그 사람들은 우리가 누리지 못한 다른 풍성한 것들로 인해, 과자 없이 즐겁던 내 어린 시절과, ‘법’ 없이 모이던 우리 동네의 시초처럼, 우리가 추측하는 험한 상황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금희는 중국 길림성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나서 성장했다. 연길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다 2006년부터 장춘에 정착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7년 ‘연변문학’에서 주관하는 윤동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중국에서 첫 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를 출간했지만 한국에서는 처음 소설집을 냈다. 금희는 “언젠가 흔적 없이 사라질 나 자신이 세상에 대하여 실체가 아닌 것처럼, 내 위에 덧입힌 가족, 직업, 민족, 국적 같은 것들도 결국 그 자체만으로 나에 대하여 실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런 세상 속에서 나는 영혼의 자유로운 탈출을 마련해보려는 요량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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