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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잃는 건 목숨을 잃는 것…”

입력 : 2015-11-20 07:36:21 수정 : 2015-11-20 07: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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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같은 언어로 우연히 다가온 사랑
진연주 장편소설 ‘코케인’
진연주(사진) 장편소설 ‘코케인’(문학동네)은 서사 밖의 소설이다. 언어가 소중하고 그 언어를 운용하는 정서가 돋보이는 서사다. ‘코케인’ 같은 마약처럼 언어로 인하여 국소마취되고 흐린 창 너머 겨우 사랑이 보일 듯한 풍경이다.

코케인이라는 카페에 자주 들락거리는 굴드, 몰리, 좀머, 페터, 이안이 이 소설의 화자들이다. 이 중에서도 소설을 쓰는 ‘굴드’는 별안간 달아날 ‘굴(?)’과 한자에는 없는 글자인 ‘드’를 붙인 이름으로, 언제든지 사라지는 존재라는 의미의 작명이다. 굴드는 몰리와 희미한 사랑을 나눈다. “그가 몰리의 내면에 있는 깊숙한 창고에 뛰어든 순간 몰리는 그의 무릎을 타고 앉아 입을 맞추었다.” 사랑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의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데려오는 법이다.”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이 소설 내내 쏟아진다. 몽롱하고 새로워서 진부하지 않다. 사랑하는 이들의 복잡한 감정을 두루 아우르는 공감의 폭이 크다. 

“굴드가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워하는 점 중의 하나가 눈에 보이는 것을 말로 옮기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수면에 빛이 잘게 부서지며 빛날 때, 굴드는 그것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물고기 비늘 같다는 표현도, 설탕 알갱이 같다는 표현도, 반딧불이가 반짝인다거나 물에 별이 빠져 있다는 표현도 이미 누군가 써먹었다는 것, 그래서 그 무엇으로도 새로울 게 없고 모든 것은 표절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한 좌절감이 굴드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그 사랑은 남녀 사랑을 넘어선 언어에 대한 사무침이기도 하다. 무릇 글을 쓰는 이들치고 언어 때문에 좌절하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진연주는 굴드의 입을 빌려 “사물이 굴드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사물 자신의 생각을 하고, 굴드 자신은 사물의 사유를 그대로 옮겨적는 필경사이기를, 그러니까 자신의 몸은 사물의 의식을 대신하는 창고이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찰나에 일어나 사유의 시간은 사라지고 감각과 언어만 남게 되기를 바랐다.” 작가에게 사랑과 언어는 등가의 개념이다. “사랑은 관념이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언어를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므로… 언어를 잃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언어를 잃는 순간 사랑을 지속하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진연주의 첫 장편을 두고 평론가 황현산은 “주인공들을 공기와 햇빛처럼 감싸서 그들 하나하나를 댄디로 만든다”고 뒤표지에 썼다. 문학동네 최종심에서 아깝게 탈락했다는 이 장편은 “서사보다는 내면에, 사건보다는 문장에, 대사보다는 침묵에 더 힘을 기울인 소설”(류보선)이다. 곁에 두고 아끼고 싶은 음악 같은 소설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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