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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순교의 역사·애환 서린 곳… 교황 방한의 감동 그대로

입력 : 2015-11-20 10:00:00 수정 : 2015-11-20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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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제1순례지' 해미읍성과 솔뫼성지
한국 천주교 최대 성지인 충남 서산 해미읍성은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이후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사진은 관광객이 성내를 둘러보는 모습.
충남 서산과 당진에는 조선시대 천주교가 박해와 수난을 당한 현장이 있다. 서산 해미읍성과 당진 솔뫼성지가 그곳이다. 지난해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이후 관광객이 증가하는 등 관심을 끄는 지역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지 1년여가 지났지만 ‘프란치스코 효과’는 여전했다. 해미읍성, 솔뫼성지 곳곳에는 교황 방문을 기념하는 입간판과 사진,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고, 관광객은 이곳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풍경이 목격된다. 

해미읍성은 한국 천주교 최대 순교성지다. 내포지방의 천주교 박해 때 1000여명이 처형됐다고 한다. 해미읍성은 교황 방한 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가 열렸던 곳으로 당시 청년 6000여명에 참석했다.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 17년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다. 성벽 높이 5, 둘레 1.8㎞에 달하는 성이다. 성 입구 옆 성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公州(공주)’, ‘李(이)아무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공주에서 온 사람들이 성벽을 쌓았고, 책임자는 ‘이아무개’라는 뜻이라는 게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해미읍성은 이순신 장군과도 관련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선조 11년 이곳에서 10개월간 군관으로 근무했다. 천주교를 믿었던 정약용 역시 여기서 짧은 유배생활을 했다. 
읍성 내에는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나무가 있다. 천주교인들이 매달려서 고문을 받았던 회화나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희생된 순교자들을 등불(호야)에 빗대 이 나무를 호야나무라고 부른다. 천주교 박해지로 알려진 해미읍성은 일제강점기에 성 철폐령이 내려지면서 해미읍성 안에 땅들을 민간인들이 헐값에 사들였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90여 가구가 해미읍성 안에 살았다. 

읍성 언덕 위에 있는 청허정 인근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얼굴을 새긴 장승들이 있다. 한 조각가가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쓰러진 소나무들을 이용해 대통령의 얼굴들을 재밌게 작품화했다. 해미읍성 곳곳에는 민가나 주막 등을 재현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할머니들의 다듬이질이나 할아버지가 돗자리를 짜는 모습 등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활쏘기 등 각종 체험도 할 수 있다. 천주교인들의 수난의 현장이 지금은 주민과 관광객의 휴식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당진도 한국 천주교의 역사와 애환이 서린 곳이다. 기자가 찾은 우강면 솔뫼성지는 1821년 8월21일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라는 뜻으로, 솔뫼성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소나무들은 ‘당진구경’ 중 하나로 지정돼 있다. 성지 내 중심에는 배 모양의 성당이 있는데, 이는 김대건 신부가 서해 바다를 건너 중국을 오가던 라파엘호를 상징한다고 한다. 김대건은 16세 때 신학생으로 선발돼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신학을 공부해 24세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1784년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 61년 만에 첫 사제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김대건은 이듬해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솔뫼성지 내 김대건 신부 생가에는 기도하는 교황 동상이 있다.
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는 ‘대건당’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생가를 복원했고, 소나무 숲 한가운데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대건은 지난해 8월 이곳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생가에는 김대건을 위해 기도하는 프란치스코상이 있다. 이곳은 종교를 떠나 방문객을 숙연케 하는 공간이다. 그 앞의 둥근 모양의 광장은 모래사장을 뜻하는 아레나로 불린다. 아레나 둘레에는 12사도상이 세워져 있다. 모든 이가 12사도와 같이 복음의 전파자가 되기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세웠다고 한다.


솔뫼성지 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있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은 천주교 신자는 물론 관광객도 숙연케 한다.
당진의 천주교는 평민들이 주축이 돼 수용된 것이 특징이다. 다른 지역에서 양반이나 중인이 중심이 돼 천주교가 받아들여진 것과 비교된다. 당시 당진의 천주교 신자들은 신분의 벽을 넘어 성경의 가르침대로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등 사랑을 베풀어 신앙이 하층민으로까지 확대됐다. 이는 조선시대 내내 당진의 천주교가 가장 탄탄한 신앙공동체로서 역할을 하게 했다고 한다. 

솔뫼성지 외에도 당진 곳곳에는 1890년 건립된 최초의 성당인 합덕성당, 조선시대의 가장 큰 교우촌인 신라성지, 1868년 박해 때 선교자의 무덤이 있는 원머리 순교자 묘 등이 있다. 종교적 신념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일반 방문객도 끊임없이 이곳을 찾고 있다.

서산·당진=글·사진 박태해 선임기자 pthl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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