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헬조선’(지옥과 같은 한국)은 계급사회다. 그들은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 등 수저의 재질로 자신을 정의한다. 최근엔 극상위층인 다이아수저도 등장했다.
금수저와 흙수저는 태생부터 다르다. 이를 나누는 기준은 단순히 금전적 조건을 뛰어넘는다. 교육환경과 주거지역, 직업과 타고 다니는 자동차까지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전부가 계급을 기준 짓는 구성요소가 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헬조선에선 안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통용되는 계층을 구분하는 '수저론'이 은수저(silver spoon)라는 영어 표현에서 왔다고 말한다. 청년들은 이 수저론을 바탕으로 부모의 재산과 직업에 따라 자기 자신을 구분 짓는다.
자산이 20억원 이상이면 금수저, 5000만원 미만이면 흙수저다. 대학 입학 후 부모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면 흙수저, 원룸이나 전세 등 교육환경을 다 지원받으면 금수저로 보기도 한다. 사실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수저론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헬조선에선 안된다’는 공통된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른바 '수저인증'을 즐긴다. 자신이 수저론에서 어느 위치에 있다는 걸 간단한 사진 등을 통해 타인에게 인증하는 것이다.
간혹 보이는 금수저 인증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내가 이러고 산다'식의 흙수저 인증이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흙수저 아점(아침 겸 점심)'이라는 글이 그 예다. 글쓴이는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1500원에 파는 치킨너겟 10조각과 도시락 매장에서 900원에 산 흰 쌀밥 사진을 올리며 "2400원 흙수저 식사"라고 덧붙였다.
◆2400원 ‘흙수저’ 식사를 아시나요?
순식간에 해당 글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다. 네티즌들은 "난 굶었는데 밥 먹은 게 어디냐" "물도 없이 목메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수저론의 등장 배경을 '줄 세우기식 서열 문화'로 꼽고 있다. 예전엔 강남-비강남 구도로 계급화했다면 지금은 그 구조가 세분화됐으며,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자신들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계급을 정의한다는 것이다.
◆사회 양극화 심화…도달 불가능한 계급 정의
가파른 경제발전이 낳은 양극화가 사회구조가 됐고,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였는데, 지금은 '용이 개천으로 다시 돌아가는 시대'가 됐다.
청년들의 이 같은 자조적 표현은 '잉여'에서 '삼포 세대'로, 다시 '수저론'으로 변모했다. 자신들의 처지를 점점 더 구체적이고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선 20세 이상 성인 기준으로 자산 상위 10% 계층에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포함한 전체 부(富)의 66%가 쏠려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위 50%가 가진 것은 전체 자산의 2%에 불과했다. 소득 불평등보다 심각한 부의 불평등은 점차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낙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국세청의 2000∼2013년 상속세 자료를 분석해 한국사회 부의 분포도를 추정한 논문을 최근 낙성대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김 교수는 사망자의 자산과 그들의 사망률 정보를 이용해 살아있는 사람의 자산을 추정하는 방식을 썼다. 사망 신고가 들어오면 국세청은 자체 전산망으로 알아낼 수 있는 사망자 명의의 부동산·금융자산을 파악한다. 이 때문에 상속세 과세 대상이 아니더라도 사망자의 자산이 대체로 포착되게 마련이다.
분석 결과 20세 이상 성인을 기준으로 한 자산 상위 10%는 2013년 전체 자산의 66.4%를 보유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0∼2007년 연평균인 63.2%보다 부의 불평등 정도가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평균 자산은 6억2400만원이고, 자산이 최소 2억2400만원을 넘어야 상위 10% 안에 드는 것으로 추정됐다.
◆부의 불평등 심해져
2013년 상위 1%의 자산은 전체 자산의 26.0%를 차지해 역시 2000∼2007년(24.2%)보다 불평등이 심화됐다. 상위 1%의 평균 자산은 24억3700만원으로, 자산이 9억9100만원 이상이어야 상위 1% 안에 들어갔다. 상위 1%의 평균 자산은 2000년 13억7500만원, 2007년 22억7600만원에서 계속 늘었다. 여기서 자산에 들어가는 부동산은 공시가격 기준으로 계산됐다.
이를 시가로 바꿀 경우 자산이 13억원을 넘겨야 상위 1%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0.5% 안에 드는 최고 자산층의 평균 자산은 36억5900만원이었다. 하위 50%가 가진 자산 비중은 2000년 2.6%, 2006년 2.2%, 2013년 1.9%로 갈수록 줄고 있다. 이런 결과는 그간에 나왔던 국내외 연구진의 자산 불평등 추정 결과보다 심각한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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