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간 갈수록 거세지는 개방 파고에 농업과 농민은 늘 피해를 보는 약자였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가 생겨날 때마다 정부는 농업 보호라는 이유로 혈세를 쏟아붓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우리 농업은 좀처럼 생기를 찾지 못했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김용환 농협금융지주회장은 우리 농산물 수출이 농업의 살길이고 농업금융의 해외진출도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한다. 김 회장은 지난 4월 말 취임 이후 농협금융 글로벌화를 경영화두로 던졌다. 그가 오기 전 농협금융은 해외진출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국내 은행의 예대마진(예금과 대출 금리 격차)과 수수료 수익이 줄었고 이제 국내에서 먹을 게 없다”며 “이제는 해외로 가야 한다”고 단언한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농협금융 집무실에서 농협금융의 해외진출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김 회장은 어떻게 농협과 금융, 글로벌을 접목할 생각을 하게 됐을까. 김 회장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행시 합격 이후에는 주로 옛 재무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외환과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맡았다. 특히 수출입은행장 3년을 지내면서 국제금융과 수출금융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아마도 농협금융지주에 이르러 그의 과거 경험들이 융합된 것은 아닐까. 농협 글로벌 구상이 우연히 생겨날 리 만무하지 않은가. 김 회장은 내년 하반기 쯤 해외진출의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농협금융의 글로벌 실험이 ‘대박’을 터뜨릴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글로벌 사업에는 많은 변수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구상은 과거 우리 농업과 농민을 괴롭혀 온 피해의식을 털어내기에, 농업성장의 새 동력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을 성싶다.
―지난 4월 취임 후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그간 소회는.
“글로벌 진출, 핀테크에 중점을 뒀다. 글로벌전략국 신설 등 조직 개편도 이런 부분을 잘할 수 있도록 바꿨고, 새 은행장 인사도 나랑 호흡맞출 수 있고 글로벌·핀테크 전략 구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했다. (농협금융지주는 지난 9일 김 회장이 추천한 이경섭 부사장을 신임 농협은행장에 내정했다) 농협이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로 사업구조를 개편한 게 3년 정도 돼서 기본은 갖췄는데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6개월 동안 현장을 다니면서 구상해 조직을 개편했으니 내년부터는 전략을 실현하는 단계로 갈 것이다. 내년, 내후년은 경제가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가 관건이 될 것 같다.”
―타 금융지주에 비해서 지주 역할이 커 보인다.
“지주에서 은행 비중이 60%(자산기준)로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작고 나머지 계열사가 적절하게 분배가 돼 있다. 금융지주를 만들어 금융사를 총괄하는 취지에 가장 적합한 게 농협금융이다. 이번에 기업투자금융(CIB) 협의체를 만들어서 투자할 때 계열사가 공동으로 하는 걸 도입했다. 계열사가 각자 투자하면 리스크는 분산할 수 있지만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 은행·증권 복합점포를 5개 냈는데 수탁고와 고객이 증가했다.”
―농협중앙회에 매년 주는 명칭 사용료가 농협금융 수익을 갉아먹고 있는 듯한데.
“올해 명칭 사용료로 3526억원을 중앙회에 줬다. 농협금융은 지역 농·축협이 출자한 중앙회가 100% 지분을 갖고 있고, 명칭사용료가 농업인 교육지원, 복지사업을 위해 사용되므로 사용료를 내는 것은 협동조합 수익센터라는 농협금융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고 본다. 다만 앞으로 자기자본비율 등 때문에 내부유보를 해야해서 명칭사용료 비중을 중앙회와 협의해야 할 거 같다.”
―적극적인 글로벌 진출 시도가 과감해보이는데.
“농협금융이 그동안 해외진출을 하지 않았고 일부 주주들도 해외가서 손해보는거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데 해외진출은 이제 필수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은행의 해외진출은 현지에 지점이나 사무소를 설치해서 교포나 해외진출 기업 상대로 영업을 했는데 이 방법으로는 수익 내기가 어렵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려고 농협금융 계열사 CEO들이 참여하는 투자금융협의회 만들어서 중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베트남을 해외진출 대상 나라로 선정했다. 가서 현지 은행을 인수하거나 은행이랑 합작을 한다. 현지에서 하는 도로나 댐 건설에 한국수출입은행이나 해외 투자은행과 같이 금융지원도 해 준다. 이게 수수료가 괜찮다.”
―구체적 성과가 있는가.
“중국하고 합작을 2,3개 정도 하려고 준비 중이다. 미얀마에서는 도시건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새마을운동 수출에도 우리가 참여한다. 조만간 양해각서 체결이 계속 나올 것이다. 우리가 해외진출을 한다는 게 소문이 많이 나서 요르단 등 여러 나라에서 같이하자고 한다. 우리가 타 금융지주와 다른 점이 유통과 금융을 같이한다. 중국에 우유를 수출하고 있고 한우는 중동에서 인기가 많은데 이런 것들을 수출할 때 금융지원을 할 수 있다. 앞으로 축산경제랑 농업경제를 더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농식품이 수출의 새로운 분야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농식품은 신뢰할 수 있다. 아프리카, 중동, 중국 등에 수출길에 정말 많다. 얼마 전에 한·중 FTA가 체결됐는데, FTA하면 농민 피해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피해만 생각하지 말고 수출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이게 우리가 살길이다. 지금이 FTA 피해의식을 바꿀 적기다.”
―미얀마와 사업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미얀마 도시건설 프로젝트를 할 때 산업단지도 짓고 호텔도 만들어서 우리 청년들이 가서 일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데 우리나라 안에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청년실업자 중) 80%가 대학생인데 어떻게 해결을 하겠나. 산업단지에 우리 기업들이 들어가면 청년들이 가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거다. 해외에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나갈 수가 없다. 우리가 프로젝트에 금융지원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청년들을 현지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거다. 청년 해외진출 모델이 하나 성공을 하면 다른 나라에도 전파가 될 수 있다.”
―글로벌뿐만 아니라 통일에서도 농협의 역할이 크지 않나.
“우리가 북한에 할 수 있는게 많을 것이다. 기본 인프라가 농업이니까 비료도 줘야 하고 농기계도 줘야 한다. (통일) 첫발을 이런 쪽으로 해야 한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앞으로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 변방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 우리가 수출입은행과 함께 사업을 할 것도 많다. 아직 농협에 남북 협력 채널이 없지만 지금부터 구상해야 한다. 우리도 통일에 대비한 구상이 필요하다.”
―‘방카쉬랑스 룰’(은행에서 특정 보험사 상품을 25% 이상 팔지 못하게 하는 것) 적용을 농·축협은 유예 받고 있다. 이게 2017년 3월에 끝나면 타격이 클 것 같은데.
“농·축협이 50년 동안 공제사업으로 농업인들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한 특수성을 인정해서 방카룰 적용을 5년 연장해준 거다. 10년 해 달라고 했었는데 5년만 해주면서 대신 자동차보험 이런 거는 못 팔게 했다. 특례 연장이 필요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방카룰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방카쉬랑스를 도입하면서 민간 보험회사 반발이 심하니까 만든 게 방카룰이다. 방카를 판매하면 보험설계사들 다 죽는다고 해서 룰을 만들었는데 지금 보면 설계사가 몇 배 늘었다. 보험산업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던 거다. 방카룰이 도입된 지 오래됐으니 현실에 맞게 고칠 필요가 있다. 또 농협생명이랑 농협손해보험이 고객에게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자동차보험, 퇴직연금 등의 판매가 필요하다.”
“농협은행은 인터넷전문은행에 앞으로도 들어갈 생각이 없다. 인터넷은행은 다음카카오 등 비금융회사 사업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은행은 이미 인터넷·모바일뱅킹이 활성화돼 있어서 인터넷은행이 필요없다. 인터넷은행 수익모델이 중금리 대출인데 우리도 이 대출을 취급한다. 빅데이터 활용만 좀 보완하면 인터넷은행에 뒤질 것이 없다. 인터넷은행 도입이 은행의 인터넷·모바일 뱅킹을 활성화하는 측면에서 ‘메기효과’는 있을 것이다.”
―핀테크 사업 추진에 애로사항은 없나.
“정보 공유에 대한 규제를 풀어줬으면 좋겠다. 작년에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도 있고 해서 우리나라 정보보호 규제가 강한 편이다. 요즘 규제를 좀 풀고 있지만 금융지주 내 각 계열사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 정보를 쉽게 공유해야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
대담=주춘렬 경제부장, 정리=오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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