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마침내 기준금리를 끌어올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질서를 주도한 미국 통화정책의 대전환이다. 금리인상은 미국 경기회복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겐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다. 특히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재정난을 겪고 있거나 외환이 부족한 상당수 신흥국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상대적으로 좋다고 하지만 한국 경제도 위험요인에 직면했다. 세계일보는 미국 금리인상 이후 한국경제의 위험과 과제를 3회에 걸쳐 진단한다.
9년 반만에 미국 기준금리가 인상된 17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 남제현기자 |
애당초 금융시장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대세였다. 경제 기초여건(펀더멘털)이 상대적으로 좋기 때문에 위기를 일으킬 만큼 돈이 급격하게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과거 위기 시와 비교하면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이 현저히 달라진 게 사실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204억달러로 줄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외환 곳간은 11월 말 3685억달러로 당시의 스무배에 육박한다. 외환위기 당시 103억달러 적자였던 경상수지도 올해 1000억달러가량의 사상 최대 흑자가 예상된다. 외풍에 견딜 방파제가 제법 튼튼한 셈이다. 외환 곳간이 빈약하고 대외 채무에 짓눌린 여타 신흥국과 처지가 다른 이유다.
그렇다고 안도할 일은 전혀 아니다. 충격은 나라 안팎에서 다른 경로로 올 수 있다. 우선 여타 신흥국의 부도 위기 가능성이다. 미 금리인상으로 브라질, 러시아, 터키, 인도네시아 등 펀더멘털이 취약한 신흥국들의 부도 위험은 한층 커졌다. 이들 나라가 금융위기를 맞게 되면 한국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수출이 더 어렵게 된다. 안 그래도 뒷걸음질치는 터에 설상가상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으로 출근하며 미국 금리 인상 영향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무역협회도 이날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국내경제와 수출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금리인상이 중국 경기 둔화와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의 불안요인과 맞물려 리스크가 증폭될 경우 신흥국의 경기를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신흥국 경기 불안은 한국의 대신흥국 수출부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17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중장기 전략회의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인사말을 하고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이 때문에 미국 금리인상과 함께 2017년 이후 부동산과 가계부채발 한국경제 위기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2017년까지 갈 것도 없다. 새해에 심각한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애당초 가계빚을 늘려 부동산 경기를 띄우는 것은 그 효과가 지속 가능한 게 아니었다”면서 “올해 먹은 것 내년에 게워내게 생겼다”고 걱정했다.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7년 만의 기준금리 인상 배경과 향후 계획 등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미국 금리인상이 과거처럼 짧은 기간에 급속히 진행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두 미국의 급속한 금리인상에서 촉발됐다. 1994년 1년 만의 3%포인트 인상은 멕시코 부도로 시작해 브라질, 러시아, 태국을 거쳐 한국까지 위기를 몰고 왔고, 2004년부터 2년에 걸친 4.25%포인트 인상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를 거쳐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박승 전 총재는 “이제 금리는 상승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미국 금리는 2∼3년 뒤 적어도 3∼4%까지는 올릴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적어도 그것보다는 더 높여야 한다는 얘기”라면서 “속도가 좀 늦는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
조순 전 한은 총재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동산·가계부채발 위기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충격을 줄일 방법이 없겠느냐”는 물음에 한참 창밖을 응시하다가 “참 어려운 일”이라고 답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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