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이 연일 인기다. 드라마의 소재가 되는 각종 사건은 물론, 등장하는 소품까지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시절을 겪어본 40대는 "맞아 그땐 저랬지"라면서 공감하고, 20대는 "정말 저랬나"라면서 흥미로워한다. 반응은 다르지만 두 세대 모두 이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
◆모두 가난하지만 정이 넘쳤다
'응팔'은 모두 가난하지만, 정이 넘치는 시대를 그린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좁은 골목에서 살아가는 다섯 가족은 부잣집이든, 반지하 집이든 끼니마다 서로 반찬을 주고받듯 서로를 아끼고 정을 나누면서 살아간다.
실제 1988년 서울의 어느 골목 풍경이 그렇게 정이 넘쳤는지를 돌아보면 의문스럽다. 그래서 '응팔'은 사실 유토피아를 그리는 판타지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응팔'은 '가진 것 없어도 마음은 넉넉했다'는 어릴적 어른들의 레퍼토리를 제대로 재현해냈으며,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가 이렇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자체의 극적 재미도 있지만, 2015년 현실의 반대 모습이 투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존재했는지도 가물가물한 30여년 전의 따스함에 기댈 만큼 2015년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의 현실이 암울한 탓이다.
◆가진 건 없어도 마음만은 넉넉했다
1988년부터 2015년까지 27년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6배 가까이 늘었고, 주택은 모든 가구에 한채씩 돌아갈 만큼 지어졌다. 두세집 건너 한두명에 불과하던 대학생도 크게 늘어 20대 대부분이 대학에 입학하는 사회가 됐다.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인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이제 우리 곁의 일상이 됐고, 집에서 늘 밥을 해주던 '엄마'들은 '워킹맘'이나 '경단여(경력단절 여성)'가 되어 버렸다. 어느 정도 해소된 절대적 빈곤의 자리에는 더 큰 상실을 안겨주는 상대적 빈곤과 박탈이 자리 잡은 것이 2016년을 눈앞에 둔 우리 사회다. 누군가는 그랬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배고파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배아파서였다"고.
'응팔'에는 툭하면 갈비찜을 해먹는 부잣집과 변변찮은 반찬 없이 식사를 때우는 가난한 집의 대조적인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부잣집과 가난한 집은 허물없이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간다.
◆1998년엔 부잣집 vs 가난한집, 허물없이 가진 걸 나누면서 살았다
그렇다면 '응팔 시대'와 2015년 현재 한국 경제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응팔'의 1988년은 한국 국민 소득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던 시기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분배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던 때라 볼 수 있다.
당시 국가 경제에 돈이 돌다 보니 국민 소비능력도 급속도로 높아졌다. 집집마다 컬러TV·비디오 등 가전제품을 갖췄고 어느 정도 급여를 받는 근로자는 자가용도 구입할 수 있었다. 일부 가정은 '퍼스널 컴퓨터(PC)'를 구입하기도 했으며, 의류 등에서 '메이커(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다.
'응팔' 1회는 한국이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올림픽 개최는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섰다는 것을 세계에 과시한 상징적인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었다. 1988년 한국 경제는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고성장의 정점에 달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10%를 웃도는 경제성장률로 '아시아의 4룡'으로 불렸던 한국은 이때부터 세계 경제력 순위 50위권에 진입하게 됐다.
◆월급 몇년만 모으면, 차도 사고 아파트도 살 수 있었다
'응팔의 시대'에서 2015년까지 27년 동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DP)은 6배RKFID 오르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어왔다. 1988년 4692달러였던 1인당 GDP는 1995년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돌파했다. 다시 12년 후인 2007년 2만3102달러를 기록, '1인당 GDP 2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에는 2만7963달러를 기록, 세계 30위 수준의 경제대국이 됐다.
이 사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0%를 웃도는 '고성장'을 이어가다가 곤두박질치는 아픔을 겪었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1983년 이후 지속적으로 10%를 넘나들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83년 10.8%를 기록한 이후 ▲1984년 8.1% ▲1985년 6.8% ▲1986년 10.6% ▲1987년 11.1% ▲1988년 10.6%를 각각 기록했다.
한국의 고성장이 멈춘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IMF 구제금융의 한파가 몰아쳤던 1997년부터 급격히 성장이 멈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1994년 8.5% ▲1995년 9.2% ▲1996년 7%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1997년 4.7%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1998년에는 -6.9%를 기록하면서 곤두박질쳤다.
IMF 구제금융을 졸업한 이후에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김대중 정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4.38% ▲노무현 정부는 4.42% ▲이명박 정부는 2.98%를 각각 기록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대를 보이고 있다.
◆"은행에 뭐하러 돈 넣어. 금리가 15%밖에 안되는디…"
은행 예금 금리도 지금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응팔'의 '성동일'은 '최무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은행에 뭐하러 돈 넣어. 금리가 15%밖에 안되는디…" 실제 1988년 은행 예금 금리는 15~20%를 기록했었다. 금리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진 것은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나던 시기와 맞물린다.
1996년 평균 7.07%를 기록했던 은행금리는 1997년 10.32% 1998년 13.62%으로 올랐다. 이때 은행 금리는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최대 18%까지 치솟았다. 이후 은행금리는 매년 낮아졌다. 2001년 5.21%에서 2005년 3.17%, 2010년에는 2.78%였고 현재는 2% 안팎을 보이고 있다.
또 1988년은 최저임금제를 처음으로 시행한 해다. 국가 경제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분배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에 이뤄졌던 일이다.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경제민주화'가 논의되고, 시행된 원년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때 최저임금은 시간당 462.50원이었다. 8시간을 근무하면 37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27년 동안 최저임금은 12배 정도 올랐다. 올해 최저임금은 5580원, 내년에는 6030원이 적용된다.
◆한국 경제 굴곡 나타내…소득 불평등 더 심해져
이렇게 한국 경제가 굴곡을 보이며 지나오는 동안 소득의 불평등은 되레 더 심해졌다. 소득의 불평등 지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를 보면, '응팔'의 시대인 1988년 0.287였다. 지니계수는 0(완전평등)과 1(완전불평등) 사이의 값을 가지면서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수다. 0에 가까울수록 평등, 1에 가까울 수록 불평등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지니계수가 0.3을 돌파한 것은 경제 위기를 겪던 1998년이었다. 이때 지니계수는 0.310을 기록했고, 1999년에는 0.323까지 심화했다. 이후 2001년에는 0.309, 2005년에는 0.312를 보였고 2008년에는 0.321로 기록됐다. 2014년에는 0.302를 기록, 오히려 1988년보다 소득불평등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경제 전문가는 "IMF 경제위기 직후부터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달라졌다고 본다"며 "그때부터 고용시장이 유연화했으며, 가계소득에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언제 취직할지, 취직해도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이어 "그전까지는 가계소득에 차이가 있었어도 심각할 정도로 크지 않았다"며 "일단 회사에 들어가면 정년이 보장됐고,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열심히 노력하면 몇 년 뒤 조그만 아파트를 장만해야겠다는 계획도 세울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에는 1번 노동시장에 탈락한 사람은 빈곤층으로 전락해 버리고, 부가 부를 낳는 형국으로 되면서 지난 10년간 갈수록 불평등 구조가 심화됐다. 지금은 언제 취직할지, 취직해도 언제까지 일할지 예측할 수도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된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