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점심은 간단하지 않다. 점심식사는 하루 중 제대로 먹는 첫 끼니인 경우가 많다. 19∼49세 성인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30∼40%나 된다는 통계(2013 국민건강영양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때문에 ‘점심에 뭐 먹을까’는 직장인들의 영원한 고민이다. 아울러 임금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이 평균 205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긴 ‘피로사회’를 사는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하루 중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하다.
세계일보는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와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의뢰해 빅데이터와 설문으로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들여다봤다. 젊은 세대는 햄버거를 좋아하고 남성은 해장음식, 여성은 카페로 몰리는 등 나이와 성별에 따라 선호가 달랐다. ‘노포(老鋪·역사가 깊은 점포)’가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에서는 남녀와 나이대의 구분 없이 노포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점심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해 점심시간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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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성별로 갈리는 선호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는 20∼30대 직장인 사이에서 단연 인기였다. 2호선 강남역 인근에서는 ‘맥도날드 강남2호점’이 20대 남녀와 30대 남성이 점심시간에 가장 많이 찾는 음식점이었다. 5호선 여의도역에서는 20∼30대 남녀 결제건수에서 ‘맥도날드 여의도점’이 1위였다. 5호선 광화문역, 2호선 을지로입구역 근처 역시 버거킹, 맥도날드 등이 높은 순위에 올랐다. 20대 결제 데이터에는 대학생들의 이용건수가 포함돼 있지만 강남역을 제외하고는 대학생들이 많지 않은 곳이라 젊은 직장인들의 패스트푸드 선호가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다. 빨리 먹을 수 있어서 식사시간을 줄여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고, 보통 5000∼7000원 하는 햄버거 세트를 점심시간에는 3000∼4000원에 팔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남성들의 선호 식당에는 해장음식을 파는 곳이 많았다. ‘동해복국대구탕’(여의도역), ‘국빈반점’(강남역·짬뽕), ‘청진옥’(광화문역·선지해장국), ‘무교동북어국집’(을지로입구역) 등 지역마다 해장음식을 파는 식당이 이용건수 5위 안에 포함됐다.
여성, 그중에서도 30대 여성은 점심시간에 카페를 많이 찾았다. 여의도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30대 여성의 선호 3위는 ‘커피빈 IFC몰 1호점’, 4위는 ‘폴바셋 여의도점’이었다. 광화문 인근 30대 여성 직장인의 선호 3위는 ‘폴바셋 코리아나호텔점’으로 집계됐다.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도 역시 ‘폴바셋 페럼점’이 30대 여성 선호 3위에 올랐다. 폴바셋에서는 우유 맛이 진하게 나는 밀크아이스크림(3500원)이 인기다.
여성들의 선호 식당에는 또 ‘메콩타이 강남역점’(월남쌈·쌀국수), ‘미즈컨테이너 강남1호점’(샐러드 파스타), ‘스쿨푸드 IFC몰점’(분식), ‘카페마마스 강남역점·센터원점’(샐러드·파니니) 등이 5위권 안에 들어 한식 외의 식사를 즐기는 경향이 남성보다 강하게 나타났다.
을지로입구역 근처에서는 칼국수로 유명한 ‘명동교자’가 2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매출 1위에 오른 것도 특징이었다. 1966년 개업해 50년째 영업 중인 명동교자는 묵직하고 걸쭉한 고기육수에 끓인 칼국수가 대표 메뉴다. 마늘 향이 강한 김치도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다. 명동에서 본점과 분점 2개만 운영하고 있지만 워낙 유명해 전국 방방곡곡에 ‘명동칼국수’라는 이름을 건 아류 음식점들이 많다.
이번 분석은 지난해 10월1일부터 올해 9월30일까지 점심시간(오전 11시30분∼오후 1시30분)의 신한카드(신용·체크) 요식업 가맹점 매출 데이터를 대상으로 했다. 직장인이 몰려 있는 강남역과 을지로입구역, 여의도역과 광화문역 반경 500m 안에 있는 가맹점의 매출을 뽑아 분석했다.
◆10명 중 7명 “점심시간 부족”
잡코리아의 설문(직장인 556명 대상) 결과 조사대상 직장인의 82.9%는 점심시간이 1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이 30분이라고 답한 사람은 9.9%였다. 68%는 점심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 응답은 20대에서는 71.5%, 30대 71.2%, 40대 이상 55.8%로 나타나 젊은 층일수록 점심시간 길이에 대한 불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점심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답한 이유로는 밥을 먹고 난 후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78.6%, 밥을 먹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19.8%로 조사됐다. 직장인 이모(28)씨는 “12시에 밥을 먹으러 나가면 인기있는 식당은 사람이 많아서 최소 15∼20분은 기다려야 한다”며 “밥을 먹고 나와서 커피를 한 잔 사면 회사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이 정해진 시간에 시작되지 않는다고 답한 직장인도 32.9%나 됐다. 점심시간이 불규칙한 이유로는 점심을 제시간에 먹지 못할 만큼 일이 많다는 대답이 57.4%로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직장인의 삶이 드러났다. 교대근무를 하면서 먹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27.9%였다.
점심식사 비용은 6000원을 쓴다는 사람이 23.2%로 가장 많았고, 5000원(21.6%), 7000원(19.8%)이 뒤를 이었다. 4000원 이하를 쓴다는 직장인은 16.9%였고, 8000원 이상을 쓰는 사람은 15.4%였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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