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미스터리 북한이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의 사망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신속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장의위원회를 꾸려 국장을 치르는 점 등으로 미뤄 교통사고를 위장한 사고사일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하지만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과거 북한 간부들은 권력다툼 성격을 띤 의문의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하는 일이 있었던 만큼 사고사가 아닌 ‘타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
29일 교통사고로 숨진 북한의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오른쪽)이 지난 10월21일 평양 미래과학자거리를 시찰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뒤에서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김 비서는 올해 김 제1위원장 현지지도 수행 순위 3위(30회)로 김 제1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최측근이었다. 연합뉴스 |
북한이 김양건이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보도한 시각인 29일 오전 6시 15분(한국시간 오전 6시 45분)은 교통사고가 발생한 시점인지, 사망 시점인지 명확하지 않다. 정부는 교통사고 사망 시각은 알기 어렵다는 점에 근거해 사고 시점이 아닌 사망 시점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고 발생 시각은 한밤중일 개연성이 크다. 김양건이 직접 운전을 했는지, 직접 운전을 했다면 목적지와 출발지가 어디였는지 등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가 많아 김양건의 교통사고 사망은 여러 의문점을 남긴다.
|
교통사고로 사망한 북한 고위 간부들. 사진 왼쪽부터 리철봉 강원도당 책임비서, 리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용순 당 비서(대남 담당). 세계일보 자료사진 |
2003년 교통사고로 숨진 김용순 대남비서는 음주운전이 사인이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측근들만 불러모아 밤늦게까지 음주가무를 즐기는 ‘비밀연회’ 정치가 횡행했고 멀쩡한 간부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저서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에서 “측근 행사의 성격상 모든 참석자는 보안유지를 위해 김정일 서기실에서 보내는 전용차를 이용하든가 자신이 직접 자기 관용차를 운전해야 한다”며 “적지 않은 측근들이 연회 참석 후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됐다”고 증언했다. 현 수석연구위원은 교통사고의 대표적 희생자로 김치구, 리화영, 리종목을 꼽았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게재된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의 부고 기사. 노동신문은 30일자 신문에서 2면의 절반을 할애해 부고와 약력,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한 국가장의위원회 구성 및 위원 명단 등을 김 비서 사진과 함께 실었다. 연합뉴스 |
하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아버지처럼 간부들과 음주파티를 즐겼을지 의문이고 김양건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어서 음주사고로 인한 교통사고일 가능성도 낮다는 시각이 많다. 모종의 권력투쟁의 희생물일 가능성도 김양건이 평소 자기 세력을 모으는 유형의 권력 엘리트가 아닌 ‘실무관료’였다는 점에서 그리 높지는 않다.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의로 낸 김 비서의 부고에 “겸손한 품성”을 적시한 대목에서도 평소 정치적 파벌을 형성한 인물과는 거리가 먼 유형의 관료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경쟁자인 장성택의 견제로 2010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죽음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얘기다.
외교안보 분야의 전직 고위 관료는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김양건의 존재감이 커지니 김양건의 처신과 무관하게 김양건의 존재를 불편히 여겨 제거하려는 시도를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김양건의 평소 스타일상 그런 일을 당할 개연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