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외교안보연구원장, 주 러시아 대사를 지낸 정태익 한국외교협회장은 세계일보와 신년 인터뷰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에 비견한 ‘한국몽’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대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의미한다. 일대일로가 구축되면 중국을 중심으로 육·해상 실크로드 주변 60여개국을 포함한 거대 경제권이 구성된다. 우리도 남북을 잇고, 터널을 통해 한·일과 아시아·북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원대한 꿈을 국민에게 심어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때라고 정 회장은 강조했다.
정태익 한국외교협회장이 새해를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외교협회 회장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이 동북아의 허브가 되는 한국몽(韓國夢)을 꿔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새해 주시해야 할 외교안보적 포인트는.
“우선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파리테러처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테러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과거 미국·영국 등 서구가 만든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중국의 부상으로 국제질서가 개편되고 있다. 이런 국제정세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고찰해서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중 관계는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한반도 통일에서도 미·중 관계 변수가 가장 크다.”
―통일을 위해서라도 대미, 대중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하지 않나.
“결국 미·중 관계에 의해 한반도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미·중 관계가 갈등관계로 진행될수록 통일 전망은 어두워진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외교안보 정책을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경우 미국은 배치하려고 하고, 중국은 반대하고 있어 우리 외교안보에 큰 딜레마를 조성하고 있다.”
“한국 외교는 냉전시대에는 서방진영에 속해서 그 진영을 추종하는 외교를 했다. 독자적 외교를 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는 세계 경제 10위권의 중견국이다. 외교안보환경이 이런 (미·중 갈등) 상황으로 진행되면 (외교안보적) 재앙, 외교안보적 위기에 봉착하기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과 자주국방력 강화를 통해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뒤 외교적 자율성이 바탕이 된 외교역량을 갖고 미·중 관계가 갈등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미·중 조화외교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주국방력 강화는 어떻게 가능하나.
“조화외교의 바탕에는 자주국방이 있다. 자주국방력 확보를 위해서는 미국에서 전작권을 환수해야 한다. 미국에 의존적인 (안보)정책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군 장성들이 지금처럼 대미 의존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주국방과 조화외교를 통해 외교의 자율권, 자주권을 확보해 우리 주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5·24 조치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남북 경쟁은 이미 끝났다. 우리의 경제적 우위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북한의 시장화가 주는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대북)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5·24 조치도 (재)조정, 재검토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를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개성공단이든, 나진선봉이든, 신의주나 중국 단둥(丹東)이든, 남·북·중 사업이나 남·북·러 사업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
“원칙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나 더 중요한 것은 융통성의 발휘다. 꿩 잡는 매가 돼야 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천안함 폭침 사과나 북핵 문제 해결 없이 북한을 지원하는 게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 아니냐고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북한의 핵무기는 더 소형화하고 고도화한다. 이는 우리 외교의 재앙이다.”
―남·북·러 협력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은.
“현재 한국이 약속한 부분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우리 참여를 반대해 러시아가 우리를 대신해 참여했는데 우리가 약속한 부분을 안 하고 있다. 경제적 이득이 없다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 지정학적 투자는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 사업에 참여할 민간기업(포스코·코레일·현대상선)에 남북협력기금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더 높은 차원의 외교를 위해서 정부가 기금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
―러시아의 불만이 큰가.
“신동방정책을 추진 중인 러시아도 극동아시아지역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으니 잘 활용해야 한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만이라도 구체적인 성과를 올려야 한다. 당장 큰 이익은 없지만 장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해야 한다. 연해주 개발에도 우리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
“통일의 핵심 두 가지는 남북관계 개선과 4강(미·중·러·일)과의 조화다. 역사적 불행은 있으나 통일을 위해 한·일 양국의 앙금을 극복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창한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에 힘을 싣는다는 측면에서도 잘 됐다고 평가한다. 미국은 한·미·일을 결속시켜 중국 부상에 대비한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위안부 문제, 역사인식 문제, 야스쿠니(靖國) 문제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 미국이 압력을 넣어서, 종합적인 영향력을 미쳐 타결이 됐다.”
―일본의 법적 책임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대의적, 대국적 측면에서 잘된 일이라고 본 것이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 위로나 관련 단체에 대한 대처는 우리의 몫이니 우리가 잘 해야 한다.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위로하고, 고위 인사들이 진정성을 갖고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설득해야 한다.”
―외교 원로로서 새해 하고 싶은 말은.
“원대한 비전의 한국몽을 갖자는 것이다. 중국몽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한국몽도 이야기할 때가 아닌가. 우리는 한반도가 중심국가가 되기 위한, 통일을 위한 청사진이 부족하다. 한국몽이라는 우리식 일대일로가 필요하다. 한·일터널, 베링해터널 프로젝트는 한반도가 중심이 되는 원대한 프로젝트다. 한·일은 터널로 연결하고, 남북은 철도로 연결하고, 아시아·아메리카대륙은 터널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 탓에 철도 연결이 지연돼도 서해를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와 연결할 수 있다. 한국몽은 동북아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고 우리 국민이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김청중·염유섭 기자 ck@segye.com
●1943년 충북 청주 출생 ●경복고 ●서울대 법학과 ●1969년 외무고시 합격 ●주 이집트 대사 ●외무부 차관보 ●주 이탈리아 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김대중정부) ●주 러시아 대사 ●이명박대통령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피스로드포럼 회장(현) ●한국외교협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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