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우(25·경기도BS연맹)는 고등학교 때까지 단거리 육상선수로 활약했다. 인천체고 출신인 그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힘겨운 합숙 생활 탓에 엘리트 선수 생활을 접었다. 서영우도 원윤종과 같은 성결대에서 평범한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2010년 새내기 첫 여름방학을 만끽하던 그는 썰매를 배우고 국가대표 시험에도 응시하겠다는 친구를 따라나섰다.
2010년 8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스타트 훈련장. 그해 열린 밴쿠버올림픽의 여운 때문인지 씨름선수부터 육상선수에 이르기까지 50여명의 장정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원윤종, 서영우도 그 안에 속했다. 아직 제대로 된 경기장을 못 갖춰 봅슬레이는 스타트 구간에서 썰매를 미는 기록이 빠른 순으로 국가대표를 뽑는다. 이 선발전에서 원윤종이 1위, 서영우가 2위를 차지했다. 원윤종은 썰매 앞자리, 서영우는 뒷자리에 앉았다. 태극마크를 달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그들의 여정은 이렇게 막을 올렸다.
“로이드 사랑해요” 추모 스티커 붙이고 23일(한국시간)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2015~2016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5차 대회 2인승 봅슬레이에서 1위에 오른 원윤종(앞)-서영우 조가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휘슬러=AP연합뉴스 |
2010년 11월 미국 유타 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북아메리카컵. 원윤종-서영우가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나선 국제대회다. 이때 이들의 공식기록은 없다. 봅슬레이가 뒤집어져 완주조차 못했기 때문. 이처럼 기량 미달로 경기 중 썰매가 뒤집어진 건 이들에게 다반사다. 썰매가 대당 억대를 호가해 제대로 구입조차 못한 대표팀은 2012∼13시즌까지 유럽 선수들이 쓰다 버린 썰매를 사용했다.
2011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겨울 스포츠 붐이 일어나면서 썰매 종목에 대한 지원도 늘어났다. 봅슬레이 대표팀은 2013년 대한체육회의 지원으로 네덜란드의 ‘유로테크’ 썰매를 처음 구입했다. 지난해 2월 독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부터 라트비아의 ‘BTC’로 썰매로 교체해 사용 중이다. 대표팀은 30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유럽대회 때부터 현대자동차가 만든 국산 썰매를 탈 예정이다. 2014년 소치 올림픽 때만 해도 원윤종-서영우의 성적은 18위. 2018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상위권 진입 가능성을 엿본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잇따른 실패에도 주저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결국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2015∼16 시즌 월드컵 1차대회부터 원윤종-서영우는 메달 소식을 전해왔다.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 두 대회에서 연속으로 동메달을 거머쥔 이들에게 봅슬레이 전문가들은 ‘기적’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침내 23일 이들은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주 휘슬러에서 열린 월드컵 5차대회에서 1, 2차 시기 합계(51초63, 51초78) 1분43초41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으로는 최초로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쾌거다. 봅슬레이 선수단을 지원하는 한국스포츠개발원 민석기 박사는 “스타트가 빠를수록 결과가 좋은 걸 발견했다”면서 “서영우는 허벅지 뒷근육이 약했다. 스타트 스피드를 올리기 위해 뒷근육 강화운동을 지원해 선수들이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23일(한국시간)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2015~2016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5차 대회 2인승 봅슬레이에서 1위에 오른 원윤종(앞)-서영우 조가 레이스를 마친 뒤 코칭스태프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IBSF 공식 홈페이지 |
원윤종-서영우는 23일 금메달 획득을 계기로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24일 경기에서는 9위를 차지했음에도 1위 자리를 고수했다. 봅슬레이뿐 아니라 스켈레톤에서도 메달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스켈레톤의 윤성빈(23·한국체대)은 24일 같은 대회에서 1, 2차 시기 합계 1분45초24로 동메달을 따냈다. 그는 올 시즌 다섯 대회에서 연속으로 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로써 윤성빈은 세계랭킹 2위가 됐다.
원윤종, 서영우, 윤성빈 덕분에 한국 썰매는 세계 정상급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선수들이 이 페이스만 꾸준히 이어가면 평창에서도 메달 전망이 밝다는 분석이다. 올림픽에서 썰매는 그동안 유럽과 북미의 잔치였다. 하지만 세 선수의 등장으로 한국이 세계 썰매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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