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법정 지음/책읽는섬/1만2000원 |
성철과 법정은 현대 한국 불교의 거인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혹독한 고행과 엄격한 자기 수행, 초지일관의 원칙을 고수했던 선승의 이미지가 성철이다. 법정은 온후하면서도 강직한 수도자의 자세와 품위 있는 삶과 글로 불교 대중화에 힘을 썼다. 두 사람 사이에 속세의 나이와 승려의 경력 모두 20년 차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성철과 법정의 인연은 깊었다.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했던 성철이지만 유독 법정만은 인정하고 아꼈다. 법정은 그런 성철을 불가의 큰 어른, 스승으로 따랐다.
이 책은 두 사람 간의 대화와 인연의 흔적들을 모은 것이다. 법정의 날카로운 질문과 성철의 온후하면서도 핵심을 찌른 화답은 시공을 초월해 큰 울림을 준다. 성철의 보좌승이었던 원택의 증언도 이 책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법정이 출가하기 한 해 전인 1955년 성철은 이미 초대 해인사 주지에 임명될 정도로 명성과 인망이 높았던 고승이었다. 그러나 당시 성철은 주지 임명을 거절하고 대구 파계사 성전암으로 옮겨 10년 동안의 수행에 들어간 일화는 유명하다.
“불교란 무엇입니까? 타 종교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중도 이론을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중국 선종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불교의 초심자라도 알 수 있는 질문들이다. 법정은 초심 학인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져 성철의 법문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 했던 질문이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서 묻는 것이었다. 성철의 설법은 명쾌했다. 청중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하는 그의 답변은 한국 최고 선승의 면모를 발휘했다.
법정이 “인간이 정말 성불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성철은 답했다. “땅을 파고 금광을 파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이 나오고 금이 나오니 파는 것 아닌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정진해 성불하라고 한 것일세.”
성철은 자신을 만나려거든 3천배를 하고 오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해인사에서 성철의 설법을 듣기 위해 땀흘리며 3천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측은이 여긴 법정은 성철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성철은 답했다.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라는 뜻에서 3천배를 하라고 했네. 절을 하다 보면 자연히 성불하네.” 성철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철학과 종교, 역사, 사회 진리가 흠뻑 스며 있었다.
이 책은 선승(성철)이 세상과 떨어져 홀로 수행하는 승려라는 인상을 말끔히 지워 버린다. 치열하게 타인과 세상을 위해서 살았음을, 또 항상 사회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 본질은 ‘사랑’이었다.
보조국사 지눌의 사상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음에도 두 사람의 교류에는 변함이 없었다. 1993년에 성철이 열반에 들었을 때 추모사를 쓴 이도 법정이었다. 이 책은 흔한 불교 서적들과 대비된다. 어려운 불교사상을 쉬운 말로 풀이하면서도 핵심을 모은 책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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