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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핵무장론 '공포의 균형' VS '경제적 손실'

입력 : 2016-02-23 18:58:12 수정 : 2016-02-23 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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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론' 전문가 설문조사 / 안보·핵 전문가 64% “한국 핵무장론 반대”/ “한국, NPT 탈퇴 땐 국제제재로 경제 붕괴… 손실 너무 커”
세계일보 설문조사에서 국내 외교안보 및 핵 관련 전문가 64%(50명 중 32명)가 핵무장론(독자 핵개발 + 미군의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일반 여론과 큰 차이가 난다. 14일 연합뉴스·KBS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2.5%가 핵무장에 찬성했고, 핵 대응 자제 주문은 41.4%에 그쳤다. 핵무장론에 대해 전문가 그룹이 일반 국민에 비해 훨씬 더 신중함을 알 수 있다.


미국이 1953년 4월18일 네바다주 실험장에서 23kt 규모의 핵폭탄을 폭발시킨 ‘오소리(Badger)’ 실험 장면. 당시 기록에 따르면 폭발로 지면에서 약 1.4㎞ 높이까지 화염이 솟아올랐다.
위키피디아 제공
◆전문가, 핵무장론에 신중

현재 국내에서 거론되는 핵무장론은 크게 독자 핵무기 개발론과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론으로 나뉜다. 독자 핵무기 개발론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NPT는 5대 강국(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이외 나라의 핵무기 보유와 제3국에 대한 핵무기 이양 금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독자 핵 개발에 반대한 전문가들은 △NPT 탈퇴 따른 국제제재 △한·미동맹 와해 △일본·대만의 핵무장을 야기하는 핵 도미노 △사실상 북한 비핵화 목표 포기 등을 이유로 들었다. 신정승 전 주중대사(동서대 국제학부 석좌교수)는 “한국이 NPT, IAEA를 탈퇴할 경우 예상되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궁 영 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장은 “한·미 동맹이 붕괴하고 국제사회가 제재할 경우 해외 의존도가 80%가 넘는 한국 경제는 무너질 수 있어 비용·혜택을 모두 고려하면 독자 핵 개발은 손해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IAEA 의무사항을 위반하면 원전 원료인 우라늄의 구입이 불가능해지고, 그러면 우리 전력 생산의 35∼40%를 차지하는 원전은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핵무장 찬성 전문가들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주장했다. 한마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논리다. 독자 핵개발을 주장한 전문가들은 미국 핵우산의 한계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핵 개발을 통해 남북 간 군사적 균형을 확보하고, 미·중 대립 구도에서 독자적인 외교안보 공간 확대를 확대하며, 절감한 재래식 무기 군비를 복지·교육 등에 투입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이점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독자 핵 개발론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NPT 제10조 1항은 회원국이 비상사태 시 조약 탈퇴 권리를 인정하고 있어 북한이 수소폭탄을 가지고 제5차 핵실험을 할 경우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처음(핵 개발 초기)에는 당연히 힘들겠지만 독자 핵개발을 한 인도도 미국의 전략적, 경제적 이유 때문에 제재가 6개월 만에 풀렸다”며 “우리는 원전 발전 원료도 3∼5년치를 비축해 견뎌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술핵 배치도 미국 동의 불투명

핵무장론 중 전술핵 재배치는 1991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앞서 철수된 주한 미군의 전술핵을 다시 배치하자는 주장이다. 국제 제재나 한·미 동맹 와해를 불러올 NPT, IAEA 탈퇴를 회피하면서 대북 핵 억지력을 강화한다는 논리다.

현재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터키는 미국과 핵공유(Nuclear Sharing) 개념으로 F-16 등 전투기에 실어 공중투하하는 B61전술핵폭탄을 미군 관리 하의 자국 내 기지에 배치한 상태고, 폴란드도 미국과의 핵 공유를 검토 중이다. 결국 전술핵 배치는 미국 동의가 필수적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자위적 독자 핵무장은 우리가 논의하는 순간부터 엄청난 비용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하나 전술핵은 어차피 미국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술핵은 핵에 핵으로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효과가 매우 클 수 있다”고 밝혔다. 임만성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핵 개발은 우리 행정부는 그럴 의사가 없고, 정치권에서 몇몇이 이야기하나 비토 플레이어(Veto Player·거부권자)가 훨씬 많고, 감수해야 할 국제적·경제적 불이익을 너무 커 국민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해서 차선책으로 전술핵 배치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건부 한시적 전술핵 재배치론도 거론됐다. 전술핵을 바로 배치하기보다는 일단 소규모 전술핵무기의 재배치 후 시한을 정한 뒤 그 시한 안에 6자회담 등 북핵 협상이 타결돼 북이 핵을 포기하면 재배치 계획을 철수하되 협상이 실패하면 전술핵을 재배치하자는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독자적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건부 한시적 전술핵 배치를 찬성한다”고 밝혔다.

전술핵의 한반도 배치가 효용성이 작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괌, 오키나와에 핵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북한에 타격을 주는 것은 일도 아닌데 굳이 전술핵을 한국에 들여오는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고,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동해 등 한반도 주변에서 미국 핵잠수함이 활동하고 있을 텐데 한국에 전술핵을 가져다 놓은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대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전술핵을 재배치하면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비판할 정당성과 명분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북한 김정은
◆“비핵화선언 폐기 공식인정 안 돼”

이번 설문조사에서 핵무장론에 반대한 32명 중 11명은 핵옵션(Nuclear Option)에 찬성해 주목된다. 핵 옵션은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과 같은 기술 확보 후 핵 공격 위험에 직면했을 경우 핵으로 대응할 여지를 남긴다는 정책이다.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은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노태우정부 시절 핵옵션을 갖자는 평화적 핵주권론을 주장했다가 1994년 국방연구원에서 강제해직됐다는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좌교수)은 “NPT가 금지하는 규정 외 모든 옵션을 다 확보해야 하고 그 핵심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현재는 핵무장을 안 해도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가장 빠르게 핵무장을 할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핵 전문가는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리 등을 확보했을 경우 핵무기 개발 결단을 내린 시점에서 이르면 18개월∼2년 안팎의 기간에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관세 경남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차관)는 “핵무장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이롭지 않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한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핵옵션이 하나의 지렛대로 나름의 역할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상진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는 “핵옵션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강화와 한국의 핵무장 우려로 인한 중·러의 적극적인 대북 영향력 행사를 유도하기 위해 적절하게 활용할 가치는 있으나 실제 핵무장을 위한 목적으로 추구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1991년 12월 남북이 합의·발표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56%(28명)가 사실상 폐기됐음을 인정했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공식적인 폐기 인정은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전문가 명단

강동완(동아대 정외과 교수) 강준영(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고명현(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구갑우(북한대학원대 교수)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대영(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김병관(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성걸(한국국방연구원 박사) 김연철(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열수(성신여대 국제정치학 전공교수) 김영수(서강대 정외과 교수) 김용호(연세대 북한대학원장) 김종대(정의당 국방개혁단장) 김준형(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 김태우(전 통일연구원장·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좌교수) 김희상(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남궁 영(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장) 박원곤(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 박인휘(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박지영(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백승주(전 국방부 차관) 봉영식(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균렬(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서정건(경희대 정외과 교수) 서진영(고려대 명예교수) 송대성(전 세종연구소장·건국대 정외과 초빙교수) 송민순(북한대학원대 총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신봉길(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 신상진(광운대 국제학부 교수) 신인균(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신정승(전 주중 대사·동서대 국제학부 석좌교수) 양기호(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양무진(북한대학원대 교수) 양욱(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유성옥(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윤덕민(국립외교원장) 이관세(경남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차관) 이동률(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이상현(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이장희(한국외대 명예교수) 이해영(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임만성(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장용석(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최강(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한승주(전 외무부 장관) 홍완석(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장) 홍현익(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김청중·염유섭·이동수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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