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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볼수록 빠져드는… 마음 속 ‘기분 좋은 쉼표’

입력 : 2016-02-23 20:38:01 수정 : 2016-02-24 08: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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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창간 27주년 기념 ‘마음에 거는 그림’전
김가범 작가.
문화향유자의 입장에서 마련한 전시가 열린다. 세계일보가 창간 27주년을 맞아 26일부터 3월10일까지 서울예술재단 전시실과 광화문 M갤러리에서 마련하는 ‘마음에 거는 그림’전은 그림이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전시다. 그저 작가나 평론가의 시각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시각으로 각자의 마음속에 한 폭의 그림을 걸어 보는 자리다. 옛 문사(文士)들이 예술품을 앞에 놓고 차(茶)를 즐기며 담론했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현대는 모든 것이 세분화되고 자본화되어 예술이 지향했던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공유와 소통, 자유, 공감대, 이상의 지향까지도 함께 공감하려 했던 옛사람들의 멋을 환기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국화단의 중진작가 7인이 참여하고 있다. 40여점의 출품작은 한국미술의 방향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전통회화의 가치들을 당대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주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미술의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김가범의 ‘하모니’
김가범 작가는 사군자를 수묵이 아닌 유화로 풀어냈다. 사군자의 형상을 빛으로 머금어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술라주의 추상회화가 흥미로운 것은 빛의 효과에서 오는 시각적 감흥과 형상의 자취 때문이라고 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김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그림 뼈대를 빛과 형상을 내재한 추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 피에르 술라주는 어린 시절 동굴에서의 빛 체험이 회화적 감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시각적 인식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융합되어 나타나게 마련이다. 마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현대회화는 구상과 추상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 왔다. 인간 내면의 심원한 세계로의 발걸음이다.

“늘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서려고 노력해 왔다. 경계야말로 새로운 문이 열리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형상은 추상의 영혼 같은 것이다. 형상이 없는 추상은 머리 없는 몸이라 할 수 있다.”

김 작가는 지식과 관념이라는 이성적 세계를 넘어선, 이성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세계야말로 예술이 다가설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가 동양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를 화폭에 펼쳐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가의 최고 경지인 군자의 정신세계를 구상과 추상,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어 조형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선두 작가

우리 화단이 자랑하는 김선두 작가는 동양화의 필선과 채색으로 인간 본연의 감성을 건드린다. 평안하고 넉넉하고 산보에 나선 기분을 선사한다. 기성세대에겐 증발된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준다.

조선 후기 화가 오원 장승업의 생애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 배우 최민식을 대신해 그림을 그리던 이가 김 작가다. 한국의 전통 채색을 잇고 있다. 장지(한지) 위에 차례로 여러 색을 입혀 나가 색이 우러나오도록 하는 기법이다. 서양화의 바탕칠과 덧칠과는 다르다.
김선두의 ‘별헤는 밤’

“장지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발색법에 있다. 먼저 칠한 색 위에 다시 색을 여러 번 중첩하는 것이다. 색을 얹히는 게 아니라 우려내는 것이다. 장지 기법의 장점은 수묵과 채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작업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수묵 장지기법이나 채색 장지기법이 모두 가능하다.” 그는 한국 채색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종우 작가

김종우 작가는 이 시대의 새로운 산수화를 모색하고 있다. 국내와 중국의 산수를 다년간 유람하면서 선조들의 중용(中庸)의 도를 화폭에 펼쳐내고 있다. 늘 성실한 자연의 모습처럼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화폭에 점을 찍어 나간다. 드넓은 산수를 점묘법으로 수련하듯 완성해 가는 것이다.
김종우의 ‘중용의 도’

“산수화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허물지 않으며 현실 속에서 이상향을 구현한 드넓은 세상이자 위대한 정신이다. 중용의 천하지성(天下至誠)은 모든 만물의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실천 의지다.” 이것이 그가 작은 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나형민 작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과 수수, 나무 그리고 달이 도식적으로 장치하고 있는 나형민 작가의 작품은 압도적이다. 강렬함에 서늘한 결기까지 느껴진다. 파란 하늘이 주는 무한대의 공간성 확보, 그로 인한 시원함, 광활함, 미래지향적인 희망을 드러내려는 작가의 긍정성은 예술이 지향할 일단이라는 점에서 울림이 크다.

“현대인들이 직면한 치열한 경쟁과 진격의 끝은 어디일까? 비록 어떤 소망이든 기대한 바에 전혀 부응하지 않는 공허한 지평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날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충만한 지평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지평선에 펼쳐진 풍경이 아니라 지평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제시하고 음미하는 데 의의가 있다.” 
박종성 작가

박종성 작가는 예술을 깊게 신뢰한다.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늘에 수놓은 일출같이 따듯하게 다가온다.
박종성의 ‘행성’

“인간이 사유한다는 것은 그 삶이 녹녹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삶 속에서, 우리는 항상 선택의 문제에 서게 된다. 작은 일상에서 평생을 결정하는 일들도 그렇다. 미술가의 길, 후회는 없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서야 얻을 수 있는 꿈이고 업이었다. 그래도 아름다운 행성에 의식을 가진, 행동할 수 있는 모습으로 태어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는 모든 예술을 믿는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 본향을 찾아가는 은밀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음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는 것을 모토로 작업하는 달항아리 작가 신철은 단순미의 극한을 추구한다. 아무런 무늬조차 허락되지 않는 흰 살결과 둥글면서도 둥글지 않는 특유의 형, 이 두 가지로만 모든 것을 표현하는 달항아리 모습을 닮았다.
신철 달항아리

“부드럽고 넉넉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것이 나에겐 첫 도전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것도 욕심이란 걸 알았다. 그동안 소박함, 준수함, 당당함, 넉넉한, 너그러움, 풍성함 등등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자 했던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제야 그의 작품에서 본연의 울림이 전해지고 있다. 최근 프랑스 전시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유백색 달항아리는 어미의 젖빛이다. 생명의 빛인 것이다.
신하순 작가

신하순 작가는 정갈하고 절제미가 돋보이는 단아한 작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거창한 이야기보다 생활하며 느끼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을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이념이나 커다란 메시지가 없다. 무엇을 주장하기보다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작가의 내면은 넘쳐난다. 그가 독일에서 유학을 했지만 동양화가라는 것이 어울리는 까닭이다. 
신하순의 ‘미사강변아파트’

26일 오후 3시에 진행되는 개막식엔 전통다도 행사도 열린다. 초의 선사의 차풍을 잇고 있는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이 주관하는 차시연이다. 가야금 연주자 윤지현의 공연도 펼쳐진다. 음악과 차와 그림이 어우러지는 시간이 기대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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