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같은 날 비슷한 시각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 대강당. 2년 연수를 마치고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딘 45기 연수생 350여명의 수료식이 열렸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축사에서 “단순히 과거의 법조인에게 주어졌던 역할에 머무르거나 안주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와 창의적인 발상이 요구된다”고 당부했다. “법률시장 개방에 따라 외국 변호사의 국내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새내기 법조인 여러분에게 불안감과 당혹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다.
3단계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최근 벌어진 두 장면은 이 사안 자체의 민감성, 그리고 우리 법조계를 뒤덮고 있는 위기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미국 및 EU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이들 국가 로펌에 우리 법률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물론 시장 개방이 꼭 우리 ‘빗장’만 푼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중국 FTA 체결에 따라 광대한 중국 법률시장에 한국 법조인들이 진출할 길도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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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8일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45기 수료식에 참석한 ‘새내기’ 법조인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법무법인(로펌)들의 국내 법률시장 진출이 본격화하는 3단계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법조계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23일 법무부에 따르면 이번에 화제가 된 3단계 법률시장 개방의 핵심은 국내 로펌과 외국 로펌이 함께 설립하는 합작법인, 이른바 ‘조인트벤처(joint venture)’의 지분율과 의결권이다. 우리 정부는 조인트벤처의 경영 주도권을 국내 로펌이 쥘 수 있도록 외국 로펌의 지분율·의결권을 각각 최대 49%로 제한하는 내용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FTA 상대방인 미국과 EU는 “조인트벤처의 지분율·의결권 제한은 외국 로펌에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주권침해 시비까지 낳은 리퍼트 대사의 국회 방문도 이 같은 인식 하에 이뤄진 조치였다. 하지만 국회가 지난 4일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원안 거의 그대로 가결함에 따라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외국 로펌의 조인트벤처 지분율·의결권을 제한했다고 해서 한국 로펌의 경영권 주도가 보장될 것이란 낙관은 금물이다. 외국 로펌이 겉으로 지분율·의결권 조건을 지키면서 실제로는 ‘편법’을 동원해 조인트벤처 운영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억 인구 중국 법률시장에 눈 돌릴 때”
한국 로펌이 미국이나 EU 시장에 진출할 길도 열려 있긴 하다. 하지만 로펌 제도 자체가 미국과 유럽에서 비롯한 점, 국제공용어인 영어 구사력 문제 등을 감안하면 한국 법조인들이 당장 미국과 유럽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또 다른 FTA 상대방인 중국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법률시장은 2014년 기준으로 연간 매출액이 84억달러(약 10조1400억원)에 이른다. 중국은 27만명 가까운 변호사가 있다고는 하나 13억 인구를 감안하면 국민 1만명당 변호사 수는 2명 정도에 불과해 아직은 법률 서비스가 부족한 편이다. 한국 로펌이 단독으로, 또는 중국 로펌과의 합작 형태로 진출했을 때 올릴 수 있는 잠재적 수익이 크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여러 한국 로펌이 앞다퉈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 사무소를 열었거나 사무소 개설을 타진하는 중이다. 다만 FTA의 효력에 관한 중국 국내법 규정이 한국과는 많이 달라 연구와 대비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조약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한 한국 헌법과 달리 중국 헌법은 조약의 지위나 효력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없다.
한중법학회 전수미 변호사는 “중국은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강력한 징벌적 배상규정을 도입함으로써 식품 안전과 소비자 보호를 도모하는 등 한국과 법제 시스템 면에서 차이가 크다”며 “한국 법조인들이 중국에서 자문 제공이나 소송 수행 등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먼저 중국 법제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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