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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는 자신과의 싸움, 이젠 흑조 배역도 익숙해져”

입력 : 2016-03-06 22:56:53 수정 : 2016-03-06 22: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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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호수’ 공연 앞둔 황혜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유니버설발레단(UBC) 수석무용수 황혜민(38)은 가냘프다. 곱고 여린 외모, 온몸으로 감정을 전하는 연기력 덕에 무대 위에서 비련의 여인이 그지없이 어울린다. 황혜민이 ‘백조의 호수’로 돌아온다. 이달 23일부터 내달 3일까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황혜민의 흑조는 어떨까’ 궁금했다. 주역 무용수는 백조와 흑조를 모두 춘다. 흑조는 가녀리거나 발랄한 고전 발레 주인공과 정반대다. 기품을 갖춘 팜므파탈이다. 최근 유니버설발레단 사무실에서 만난 황혜민은 “제 평소 이미지와 다르죠”라고 운을 뗐다.

“12년 전 ‘백조의 호수’를 처음 했을 때 흑조가 내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일일이 만들어야 해 힘들었어요. 자세 하나, 눈길 둘 곳까지 신경 썼죠. 배역이 익숙해져 내 것이 되니, 내 안에 잠자던 흑조가 나오더라고요.”

30대 후반인 황혜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는 “뭘 더 춰보겠다는 욕심보다 남은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며 “드라마 같은 새로운 발레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그는 내성적이고 차분하다. 인생에 큰 파고도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를 시작해 선화예중 시절 유학길에 올랐다. 2002년 UBC 입단 뒤 10년 훌쩍 넘게 주역을 맡고 있다. 황혜민은 그러나 “너무 여리기만 하면 발레를 못 했을 것”이라며 “속에 강한 면도 있다”고 했다.

“꾸준히 작은 파도를 이겨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렇게 내면에 강함이 쌓인 듯해요.”

흑조는 그의 부드러운 외피에 싸인 강한 내면을 끌어내야 하는 역이다. 외유내강인 성격은 ‘힘들어도 힘든 티를 안 낸다’는 주위 말로도 짐작된다. 감기쯤으로는 연습에 빠진 적이 없다. 그는 “저 진짜 성실하다”며 “약간 아프거나 침대에서 ‘가지 말까’ 싶은 날에도 연습실에 오면 괜찮다. 제가 안 오면 정말 아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실함으로 그는 수백번 ‘백조…’를 연습하고 수십번 무대에 올랐다. 그렇다고 마음 놓을 만큼 만만하지는 않다.

“여러 번 했다고 쉽지 않아요. 지난번과 달리 또 다른 목표가 생기고 끝이 없어요. 백조가 사람이 아니잖아요. 코가 부리라 선을 신경 쓰고, 팔은 날개라 더 길게 빼요. 어깨 진짜 아파요. 팔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는 “마지막 2막 2장에 가면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럼에도 “이제 나이가 들어 노련미와 완숙함이 있다”며 “나만의 방식을 만들 수 있어 참 좋다”고 했다.

“어릴 때는 힘과 기술로 하려고 아등바등 집중했어요. 음악대로 딱딱 맞췄어요. 지금은 좀 더 드라마로 풀려고 해요. 같은 스텝이어도 느리게 했다 빠르게 했다 하며 이야기를 만들어요. 1막 2장 아다지오가 8분이에요. 백조와 왕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죠. 여기서 왼다리에 쥐가 날 만큼 힘들어요. 제일 처음 ‘백조’를 할 때는 다리 높이 들고 3박자에 하나씩 정교하게 추려 하거든요. 이제는 완급을 줘서 8분간 곡선을 만들어요. 이 장면도 다 드라마니까요.”

해석에 공들이기 때문일까. 그의 연기력은 인상적이다. 멀리서 봐도 몸짓으로 기쁨, 좌절, 슬픔이 전해진다. 어린 시절 그는 내성적이라 웃지 않았다. 무표정하다고 지적 받았다. 미국에서도 ‘아무 감정 없이 하는 애 같다’고 했다. 발레단에 와서 달라졌다.

“문훈숙 단장님이 팁을 많이 주셨어요. 처음에 ‘지젤’ 가르쳐 주면서, 본인도 남자를 보기가 창피했다고 눈 마주치기 부끄러우면 남자 눈동자 색을 보래요. 단장님이 ‘울기 전 어디가 제일 먼저 떨리는지 아니’라고 물었어요. 눈물이 글썽글썽하면 아랫턱이 먼저 떨린대요. 그래서 저도 드라마 볼 때 어떻게 우나 집중해요. 그런데 만들어서 하면 연기가 아닌 것 같아요. 속에서 나와야 해요.”

그는 책이나 드라마를 볼 때 인물에 동화돼 상상에 빠진다. 드라마를 시청하다 ‘난 송중기랑 결혼했어야 했어’하고 남편 옆에서 장난치기도 한다. 그는 UBC 수석무용수 엄재용과 2012년 결혼했다. 두 사람은 10년 넘게 파트너로 춤췄다. 이번에는 엄재용 외에 이동탁과도 호흡을 맞춘다.

“느낌이 완전 달라요. 새로운 에너지가 있어요. 엄재용씨와는 10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노련미가 있을 거고요. 이동탁씨와는 좀 더 새로운 긴장감을 관객이 느낄 거예요. 동탁씨는 외모는 세 보이는데 전혀 안 그래요. 남자답게 보이지만 그 속에 여린 게 있어요.”

요즘 그의 고민은 2세 문제다. 출산 후 지금 같은 기량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남은 동안 최고의 시간을 보내려 해요. 추고 싶은 걸 다 추고 아이를 가져야지, 안 그럼 후회할 것 같아요. 무대에서 내려올 때 ‘미련 없다’고 말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미련이 없을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발레 그만해야지’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못 놓는 것 같아요. 춤출 때 정말 좋아요. 발레단이 가족 같아요. 물론 발레는 자신과의 싸움이라 스트레스가 있죠. 바쁘고 몸에 무리도 많이 가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자기 전에 스트레칭을 안 하면 다음날 힘들기까지 해요. 힘들고 지치는 순간도 있지만 즐기는 거죠.”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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