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작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던 한국 국적 김모(56)씨는 페이스북에서 백인 여성 A(34)씨와 친구를 맺게 됐다.
20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났지만 김씨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미군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A씨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일본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김씨는 A씨와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며 통화를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가 됐다.
김씨는 A씨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만 봤을 뿐 실제로 만나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첫 접촉 후 3개월 만에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됐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A씨는 가정사를 털어놨다. 사망한 아버지가 금괴 120㎏(시가 320만달러 상당)을 유산으로 남겼지만 아프리카 가나에 묶여있다고 했다.
이 금괴를 한국에 반입해 함께 살자고 했다. 다만 당장 반입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없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김씨는 별 의심 없이 반입 비용을 대기로 하고 일부를 송금했다. 일은 순탄히 진행되지 않았다.
A씨는 가나에서 들여오던 금이 홍콩에 압류돼 변호사 선임 등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련 서류를 김씨에게 건넸다.
김씨는 그렇게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8차례 7만4천800달러(약 9천300만원)를 송금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나 대통령이 발목을 잡았다고 A씨는 말했다. 순금이 무사히 한국에 들어왔지만 대통령의 특별 명령으로 주한 가나대사관에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일본에 있던 김씨는 A씨의 말에 따라 가나 공무원을 만나기위해 지난달 29일 한국에 들어왔다. 김씨는 가나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S(32)씨와 W(40·여)씨를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대사관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들은 공무원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김씨는 비로소 상황이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10분가량 가나대사관에 들어갔다 온 이들은 순금 알갱이 약 30g을 보여주며 김씨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순금 120㎏의 반출세금인 32만달러(약 3억 9천만원)를 주면 나머지 금을 주겠다"고 했다.
이쯤 되자 김씨는 이 모든 것이 사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김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달 1일 S씨와 W씨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체포했다.
가나 공무원을 사칭한 S씨는 호주 국적이었고, W씨는 라이베리아 국적으로 드러났다.
가나대사관에서 가져나온 순금 알갱이도 미리 소지하고 있다가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대사관 로비를 잠시 배회하고는 마치 대사관에서 받아온 것처럼 속였던 것이다.
S씨와 W씨는 경찰에서 서로 상대방을 탓하며 "시키는대로만 했을 뿐"이라고 범행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이들을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S씨와 W씨가 구속된뒤 A씨 명의로 김씨에게 '두 사람을 석방하라'는 메일이 온 점으로 볼 때 또 다른 조직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해외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결혼 빙자 사기를 친 것은 첫 사례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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