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국방광대역통합망 사업자 선정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KT가 2011년 사업권(2011∼2016년)에 이어 올해 사업권(2016∼2021년)을 따내자 잡음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14일 국방부와 업계에 따르면 입찰에 패배한 SK텔레콤(SKT) 측은 “사업자 선정의 기준 중 하나인 기술평가 세부 항목과 사업 신인도 관련 점수를 공개해달라”며 군 당국에 이의를 제기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키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한·미 해군 장병들이 10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지휘소에서 통신망에 연결된 컴퓨터를 보며 작전 연습을 하고 있다. 국방광대역통합망은 합동참모본부와 육·해·공 야전군·작전사령부급, 군단급 부대 등 우리 군의 핵심 작전 지휘부를 연결하는 유선통신망이다. 해군작전사 제공 |
국방광대역통합망은 전방 초소에서부터 군 작전을 총괄하는 합동참모본부를 연결하는 유선통신망이다. 국방부는 군 자체 통신망을 깔려면 예산이 너무 많이 소요돼 5년 주기로 민간기업의 케이블 통신망을 빌려 활용하고 있다.
지난 2월 시작된 입찰은 KT와 SKT·LG유플러스 컨소시엄이 격돌해 KT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사업권을 따냈다. KT는 2011년에도 2011∼2016년 사업권을 손에 넣었다. KT는 내달부터 2021년 4월까지 5년간 751억원 규모의 통합망 서비스를 제공한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
이번 논란의 핵심은 기술평가 90%, 입찰가격 10%로 이뤄진 평가의 가중치 배분이 적정한지 여부다. 이번에 기술 평가 점수에서는 KT가 88.25점을 얻어 SKT컨소시엄(87.02점)을 근소하게 앞섰다. 가격에서는 SKT컨소시엄이 450억원을 제시해 70억원 많은 520억원을 써낸 KT에 비해 우위였으나 판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기술평가 대 가격평가가 9대 1로 반영돼 사실상 기술평가 점수가 승부를 좌우한 탓이다.
군 조달은 예산 문제 때문에 입찰 평가 시 가격이 상당 부분 반영되며, 기술 반영 비율이 높더라도 전체 평가의 90%를 차지하는 사례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과 가격의 비율이 7대 3 정도를 넘어 9대 1까지 간 것은 특정업체를 밀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그럼에도 사업이 KT로 간 것은 평가 항목에는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KT가 군부대에 깔아 둔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가 감안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KT에 국가 기간 통신 사업자로서의 프리미엄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평가위원의 평가 점수도 논란거리다. 평가에는 위원 7명 중 위원장을 제외한 6명이 참가했다. 그런데 기술평가 부분에서 KT와 SKT컨소시엄의 점수 차의 80% 가까이(78.8%)가 특정 평가위원 2명에서 나왔다. 예를 들어 KT와 SKT컨소시엄이 기술평가에서 10점 차가 났다면 이론적으로 6명 1인당 평균 1.67점 차가 나오고, 2명이면 3.34(1.67 x 2)점차 정도가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 평가에서는 특정 위원 2명에게서 전체 점수차 10점 중 8점이 나왔다는 것이다. SKT 관계자는 “(특정 위원이 매긴) 점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면 입찰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평가 항목별 기준과 평가위원의 점수 산정 결과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불공정 평가 가능성을 일축한다. 국방부 정보화기획관실 관계자는 “SKT컨소시엄의 이의제기는 국군지휘통신사령부에서 검토해 이번 주 중 보고할 예정”이라며 “평가결과에는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 평가위원은 자신이 검토하는 제안서가 어느 업체의 것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평가에 임했다”며 “5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있어 자체 감사를 실시했지만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고 설명했다.
◆통합망 장비 성능도 도마에
SKT는 군 당국에 이의제기를 하면서 “KT가 2014년 10월 국방부로부터 부정당제재 조치를 받은 것이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에 반영됐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방부 훈령 제1839호에 따르면 부정당제재 완료일부터 2년간 사업에 참여하면 해당 업체는 감점 처리해야 한다. 이의제기는 훈령에 따라 국방부가 입찰 평가 과정에서 KT에 대해 감점을 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통합망 장비 문제도 거론된다. 이번 입찰에서 SKT는 기존 통신망과의 호환을 고려해 알카텔루슨트 장비로 입찰에 참여했다. 이에 비해 KT는 새로운 시스코 장비를 제안했다. 사업 제안요청서(RFP)에 따르면 통신망 구성에 소요되는 모든 장비와 시스템은 구축 사례 등 성능과 안정성에 대한 검증자료를 제시하도록 규정했다. KT에 장비를 제공하는 시스코 코리아 국내대리점인 A사 홈페이지에는 통신망 구축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KT는 2011년 사업자 선정 당시에는 알카텔루슨트 장비를 제안했다가 이번에 바꾼 것이다. KT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시스코가 국내에서 전송장비를 구축한 사례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 실적은 많은 편”이라며 “오히려 현재 군에서 사용하는 통신 네트워크 장비 체계를 군단과 사단급 이상 시스코, 대대급 이하 알카텔루슨트로 이원화해 향후 군의 네트워크 장비 구축사업에 해외 특정 업체의 독점적 횡포를 방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감에서도 단골 지적 메뉴
KT 관련 논란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1년 국방부 국방광대역통합망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36개 평가항목에서 입찰에 참여한 KT와 SK네트웍스에 각각 동일한 점수를 줬다. 사업수행능력을 평가한 1분과의 심사위원 3명이 부여한 10개 항목의 사업자별 평가점수는 소수점까지 같았다. 나머지 2개 분과에도 3∼4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했지만 KT와 SK네트웍스가 받은 항목별 평가점수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KT가 SK네트웍스를 제치고 사업을 수주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국회 국방위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2011년 11월9일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강하게 질책했고,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은 “감사관실을 통해 자체 감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KT는 기술적으로 2011년 사업자 선정 이후 지난해까지 800여 차례 통신망 장애를 일으켜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국방부는 운영자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지난해 4월5일 정류기 오작동으로 174분간 장애가 발생한 사고는 그냥 넘어가기에는 문제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KT 측은 “국회 국방위 지적에 대해 확인한 결과 대부분 SKT 장비에서 발생한 문제였고 정류기 오작동 장애는 KT 관리소관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박수찬 기자 worldp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