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을 보자. 왼쪽 그림 가운데에 있는 원은 오른쪽 가운데 원보다 작아 보인다. 사실 두 가운데 원의 크기는 같다. 하지만 이들 원을 둘러싸고 있는 원들의 크기에 따라 왼쪽 원은 작아 보이고, 오른쪽 원은 커 보인다.
아래 그림도 마찬가지. 뒤쪽에 있는 듯한 원이 더 커 보이지만 사실 두 원의 크기는 같다. 이른바 ‘에빙하우스 착시’ 효과다. 우리가 눈으로 직접 봤다고 해서 이를 사실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점을 이를 때 자주 인용된다. 맥락이나 환경에 따라 본질이 다르게 인식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같은 에빙하우스 착시 현상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나이, 문화에 따라 다르진 않을까.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23일(현지시간) “어른의 경우 대체로 주변을 둘러싼 원들에 따라 가운데 원의 크기를 인식하지만 7세 이하 어린이 대부분은 가운데 원의 크기만을 따지는 편”이라는 내용의 마틴 도허티 스털링대학 교수(심리학)의 ‘발달과학 저널’ 발표 논문을 소개했다.
도허티 교수가 영국 4∼10세 어린이 151명과 18∼25세 성인 24명에게 크기가 같은 두 원만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여준 결과 4세 정답률은 76%, 5세 80%, 6세 87%, 7세 95%에 달했다. 하지만 10세 어린이의 정답률은 62%로 떨어졌고, 성인들의 경우는 46%에 불과했다.
도허티 교수는 에빙하우스 착시 효과가 연령별로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둘러싼 원의 배열을 달리한 뒤 오른쪽 가운데 원의 크기를 점차 늘려가며 어느 쪽 가운데 원이 큰지를 물었다. 하나는 주변을 둘러싼 원들이 큰 것부터 제시하는 소위 ‘도움이 되는 맥락(Helpful context)’의 형태고 다른 하나는 역으로 배치한 소위 ‘헷갈리게 하는 맥락(Misleading context)’의 형태였다.
결과는 자못 흥미로웠다. 주변 원이 큰 것부터 제시된 그림에서는 성인의 경우 100%에 가까운 정답률을 보였지만 9∼10세 약 90%, 7∼8세 80%, 4∼6세 50% 등 나이가 어릴수록 오답률이 많았다.
하지만 헷갈리게 하는 형태의 그림에선 결과가 달랐다. 4∼6세 정답률은 약 60%, 7∼8세 40%였지만 9∼10세는 20%, 18∼25세 10% 수준이었다. 연구진은 또 사회문화 별로 착시 효과는 달랐다고 덧붙였다. 서구(스코틀랜드)와 동아시아(일본)인을 상대로 착시에 관한 실험을 벌인 결과 아시아인은 서구 어린이와 유사한 정답률을 보였다는 것이다.
도허티 교수는 이같은 결과에 대해 “성인의 경우 주변 맥락이나 환경이 호의적일 때는 본질을 잘 인식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어린이보다 못한 인지능력을 보인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주변 환경(맥락)을 따져 사안의 본질에 접근하는 능력을 키워가지만 그를 둘러싼 맥락이 호의적이지 않다면 어린이보다 못한 사태 파악 능력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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