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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26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동북부 5개주 경선을 싹쓸이하면서 트럼프의 후보 지명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트럼프 대항마’로 나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트럼프의 독주를 저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7월 ‘중재 전당대회’ 경선에서 트럼프 대신 다른 후보를 세우려던 공화당 주류의 구상은 차질을 빚게됐다.
워싱턴포스트는 26일 “‘다소 보수적’이라고 밝힌 유권자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주(州)가 트럼프는 18개인 반면 크루즈는 3개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고졸 이하 유권자 지지에서 승리한 주도 트럼프는 18곳인데 크루즈는 4곳에 그쳤다. ‘고졸 이하 학력’은 대체로 ‘블루 칼라’로 지칭되는 백인 노동자층과 겹친다.
블루 칼라는 원래 민주당 성향이었다. 그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행정부가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행한 ‘새로운 정책(New Deal)’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뉴딜은 정부 재정을 풀어서 대공황으로 무너진 농민과 노동자, 노인 등을 구제한 조치다. 실업자 구제 조치와 각종 사회보장 정책이 도입됐다.
사진 = GETTY IMAGES |
아래는 역대 미국 대선 결과를 시각화한 지도다.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주는 파란색,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주는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다.
그런데 린든 존슨 행정부가 흑인 인권 보호를 위한 민권법 제정에 나서면서 남부의 백인 노동자들이 공화당으로 말을 바꿔타게 된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을 공격한 공화당은 남부 백인들의 적이나 다름 없었다. 남부 백인들은 자신들의 노예였던 흑인과 친구가 되느니 자신들을 공격했던 북부 백인들과 화해하는 편을 택한 셈이다.
이제 1968년 대선 이후로는 남부에서 파란색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게됐다. (1976년 대선과 1992·1996년 대선은 예외다. 민주당이 각각 남부 조지아주 출신인 지미 카터와 남부 아칸소주 출신의 빌 클린턴을 후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1980년, 1984년 선거는 압권이다. 남부는 물론이고 민주당의 아성인 동북부와 서부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레이건 시대에 미 전역의 백인 노동자들이 대거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전향했다. 이른바 ‘레이건 민주당원(Reagan Democrat)’이다. 보수 진영의 논객들이 민주당을 ‘엘리트의 정당’, 집안 배경이 좋은 ‘강남 좌파의 정당’으로 색칠하는 배경엔 백인 노동자를 포함한 레이건 민주당원들을 공화당에 붙잡아 두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낙태나 동성애, 신앙 같은 문화적 변수들도 백인 노동자들을 보수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북부·서부주에선 민주당이, 남부·중부주에서는 공화당이 우세한 정치 구도가 만들어졌다.
사족이지만 위와 같은 그래픽은 실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위 그래픽만 보면 공화당이 승리한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인단 수를 기준으로 아래와 같은 지도를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레이건 이후 공화당원으로 변신한 백인 노동자들은 이번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 경선에서 공화당 주류 후보 대신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왜 그랬을까. 공화당이 2008년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은 백인 노동자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뉴욕 데이비드 레터만 스튜디오 근처 구직판을 목에 걸고 서있는 한 실직자. AP = 연합 |
오바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76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방안부터 마련했다. 정부 돈을 풀어서 얼어붙은 시장에 온기가 돌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정부가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런 방식의 재정지출 정책으로 효과를 봤다. 모두 알고 있듯이 뉴딜 정책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처방전에 따른 것이었다. 케인스는 정부가 재정지출 등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낮아지면서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이런 생각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시했고, 루스벨트는 케인스의 권고를 받아들여 재정지출 규모를 크게 늘렸다. ‘케인스주의’로 통칭되는 경기회복책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자료사진 |
공화당의 이런 기조는 공화당 우파의 시조격인 배리 골드워터의 생각이다. 골드워터는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의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평생을 케인스의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었던 하이예크는 개인의 자유로운 시장활동을 제약하는 정부의 개입은 비효율적이며 경기침체와 같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정부의 개입이 파시즘과 같은 폭정을 낳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이예크는 1944년 출간한 저서 ‘예종(隸從)의 길’에서 “경제적 자유 없이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게는 우파의 전체주의든 좌파의 사회주의든 정부가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선 똑같이 나쁜 체제였다. 오바마 정부의 처방이 맞는지, 공화당의 반대가 옳은 길인지를 놓고는 보수, 진보 진영이 아직도 갑론을박하고 있다. 케인스와 하이예크가 평생을 싸웠던 것 처럼 어떤 경제정책이 효과적인지를 좌우하는 변수는 한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불이 났으면 불부터 꺼야한다. 그런데 공화당은 불을끄기 보다는 소방관의 불끄는 방법이 잘못됐다면서 소방호스를 잠궈버렸다.
경기부양 조치만이 아니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협상 과정에서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하는데 전력 투구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백인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공화당원들은 오바마의 경기부양 조치를 더 선호했다는 점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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