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는 14일 “많이 보고 들은 단어들이라 우리말인 줄 알았다”며 “일본식 표현이란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나부터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8·15 광복 71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일제의 잔재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언어생활에 일본어 잔재가 심각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일본어나 일본식 한자어, 영어 표현이 수두룩하다.
이모(34·여)씨는 수도 없이 내뱉었던 말의 속뜻을 뒤늦게 알고 무척 놀랐다. 이씨는 고집불통인 네 살배기 아들이 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난리를 칠 때마다 “땡깡 부리면 엄마가 어떻게 한다고 그랬어”라며 주의를 주곤 했다. 그런데 ‘생떼’라는 뜻의 단어 ‘땡깡’이 일본어 ‘덴칸’(てんかん)에서 왔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 알았다. 이씨는 “땡깡이 뇌전증(간질)이라는 의미가 담긴 일본어라는 얘기를 듣고 아들에게 무척 미안했다”며 “더욱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따르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했다니 앞으로는 절대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이 노래방 등에서 ‘애창곡’으로 비유하는 ‘18번’도 일본어 표현이다. 일본 에도시대에 등장한 가부키 배우가 수많은 작품 중 인기 있는 걸작 18편을 선정해 이를 ‘교겐 18번’이라고 불렀는데, 이후 ‘교겐 18번’을 자주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로 썼다고 한다. 이 말이 일제강점기에 자신있는 특기 등의 뜻으로 전용돼 우리나라에 널리 퍼졌다고 하는데 ‘좋아하는 노래’로 바꿔 쓸 수 있다.
일본식 어휘인 줄 알면서도 익숙해서 무심코 쓰는 단어도 많다.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교양학부) 연구팀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일본어는 ‘구라(거짓말)’ ‘기스(상처)’ ‘간지(멋)’ ‘호치케스(스테이플러)’ ‘땡땡이무늬(물방울무늬)’ ‘쇼부(승부)’ 등이었다. 대학생들이 이 같은 일본어를 많이 접하는 매체는 인터넷(66.7%)이 1위였고 TV(25%), 라디오(5.3%), 신문(2.7%), 잡지(0.29%)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오늘날까지 일본어 잔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로 △국민의 무관심 △일본어 잔재에 대한 교육 및 홍보 부족 △정부의 무관심 등이 거론된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고 창씨개명까지 서슴없이 저질렀던 일제의 만행을 생각해서라도 일본어 잔재를 지워나가는 노력이 시급하다”며 “‘언어는 사람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국민이 평소에 이런 문제를 자각할 수 있도록 하고 (바른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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