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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세이] 은퇴 후 도시에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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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5 21:45:31 수정 : 2017-02-03 15: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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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도시화는 미래 메가트렌드이다. 유엔미래보고서는 74억 명인 지금의 세계 인구가 2050년이면 96억 명에 달하며, 65세 이상은 현재 8%에서 16%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의 3분의 2는 도시에서 살 것이라고 한다.

베이비붐 세대인 나는 지난해 10월 대학 졸업 이후부터 줄곧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출퇴근에서 벗어난 해방감으로 차를 몰고 서울 근교로 나가 바람을 쐬는 여유를 즐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갈 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운동도 할 겸,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녔다. 주차할 곳을 찾느라 애쓰지도 않아도 되고, 음주운전 걱정 없이 아무 때나 길가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도 한 잔 마시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버스는 어지간한 도시 골목까지 이어져 있었고,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시간에 정확히 왔다. 아내도 좋아했다. 백수인 남편과 1000원 남짓한 돈으로 지하철과 버스를 몇 번씩 번갈아 타며 그동안 가보지 못한 서울의 이곳저곳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록이 짙은 어느 날 지하철에 내려 사연이 많은 장충단공원을 산책한 후 남산으로 오르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도 이미 외국 여행객 몇 명이 있었지만, 남산타워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산책 삼아 깨끗하게 포장된 등산로를 따라 이태원 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여름의 갖가지 꽃들이 저녁노을에 물들어 한결 선명하고 상큼했다. 네온사인 불빛이 낮게 깔리기 시작한 이태원 거리는 젊은이들과 외국인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음(陰), 그늘이랄까? 한강으로 이어지는 한남동 길 곳곳에는 수년째 멈춰있는 재개발 추진의 흔적들이 어둠속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한강변에 들어서자 작은 불빛을 단 자전거들이 연이어 달리고 있었다. 바로 위 한강변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강변북로 고가도로에는 꼬리를 문 자동차들이 끊이지 않는 소음과 오염된 분진을 일으키며 질주하고 있었다. 강 건너 지루하게 펼쳐져 있는 아파트의 수평 윤곽선에서 가끔 일탈하려는 재건축 건물들이 도시의 불빛과 엉켜져 실루엣처럼 다가왔다.

700만 명이 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자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린 시절 자연이 함께하는 시골에서 자란 그들은 한 번씩 은퇴 후 고향의 삶을 꿈꾸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쉽게 도시를 떠날 수 없다. 문학평론가 김우창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인간 유대의 속박을 벗어나거나 느슨해지기를 원하면서도, 사람의 테두리는 존재하는 그런 곳에 살기를 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출퇴근이 없어진 그들, 극구광음(隙駒光陰)같이 빠른 세월이라지만 고령화시대로 아직도 남아있는 나날들이 까마득한 그들, 이문열의 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의 첫 주인공 세대가 될 그들은 도시의 공간 하나하나를 새롭게 찾고 만나면서 나머지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호흡하고 즐기는 가운데 자연거주의 느낌을 받는, 공기가 맑고 소음이 없는 고향의 공간을 애써 가지려 할 것이다. 그것뿐이랴. 산업화 세대인 그들은 그 도시가 글로벌 도시로서 품격을 가지기를 바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게 편리하면서도, 심미적으로도 매력적이기를 기대할 것이다. 구석구석이 매끄럽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공간, 막대한 자본을 들여 재개발, 재건축을 하면서도 용적률에 걸맞지 않은 층수제한으로 답답하고 볼품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양산되지 않는 멋과 맛이 있는 공간을 품은 도시를 꿈꿀 것이다. 그런 자유롭고 아름다운 도시를 가꾸는 데 분명 그들도 함께 하리라.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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