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끝자락에 여름 가르듯 연이틀 내리던 가을비가 그쳤다. 싱그러운 바람에 코스모스 꽃잎이 하늘거렸다. 연분홍과 하양, 빨강 색깔이 수채화로 어우러졌다. 잘 다듬어진 마당 잔디 위로 빨랫줄이 지나고 있었다. 물기 마른 빨래들이 구름 비켜 내린 가을아침 햇살에 번갈아가며 반짝거렸다. 마당 한 곁에 지붕만 있는 창고의 시멘트 바닥에는 빨간 고추와 땅콩, 얼갈이, 부추, 파 등이 거의 정확한 분량의 서너 개 덩어리로 구분되어 신문지에 가지런히 담겨져 있었다. 부엌 식탁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떡, 인절미·기지·절편이 담긴 하얀 작은 종이가방이 놓여 있었다. 각자의 집으로 떠날 당신의 자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미수(米壽)를 넘기신 어머니께서 아침 일찍 손수 준비하신 것들이었다.
중부고속도로를 벗어나 올림픽 대로에 들어섰다. 차가 미끄러지듯 한강을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은 가을 오후의 햇볕에 반사돼 붉은색 감도는 은빛으로 눈부셨다. 차가 달리는 속도에 맞추어 높고 낮은 아파트들이 다가오고 지나며 물결처럼 꿈틀거렸다. 고급 주거를 품은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오벨리스크같이 날씬한 붓끝 모습으로 높이에서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강 건너 옥수동 집에 가기 위해 동호대교에 올랐다. 근사한 빌라들이 자리 잡은 유엔빌리지 언덕이 실루엣으로 작은 병풍처럼 펼쳐졌다. 언덕 끝에 11층 높이의 건물이 홀로 우뚝 서 있다. 몇 년 전 35년 만에 리모델링한 힐탑트레져 아파트였다. 우측으로는 재개발된 아파트들이 거대한 장벽처럼 줄지어 이어져 있다. 서울숲 한강변에는 호텔식 서비스로 새로운 주거라이프를 제공한다는 한 아파트가 내년 준공을 앞두고 석양빛을 받으며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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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
우리 국민의 60%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1960년대 이전 우리는 단독주택이나 소규모 연립주택에 살았다. 이미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1930년대에 건설된 충정아파트 등 일부 아파트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1세대 격 아파트들은 산업화와 더불어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걸쳐 건설되었다. 대부분 200% 이하 용적률로 주로 5~15층으로 지어졌다. 삼사십년의 세월이 흐른 90년대부터 이들은 300% 이상의 용적률로 30층 이상으로 더 고밀도로 더 높게 다시 재건축되거나 리모델링되어 왔다. 즉 2세대 아파트 격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들어 새로운 라이프에 대응한 제3세대 아파트가 서서히 스며들고 있는 듯하다.
2015년 5월, 매킨지글로벌연구소가 세계 경제와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글로벌 4대 변화 추세 중 첫 번째로 도시화와 인구집중 현상을 제시했다. 리카도의 지대(地代)이론을 발전시켜 주장된 튀넨의 위치지대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도시의 고밀도 공간이용에 대한 압력은 점점 커질 것 같다. 한편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뿐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경주지진의 여진으로 지진에 대한 불안감도 가중되고 있다. 더욱 고밀, 고층화될 것 같은 3세대 아파트는 이러한 환경변화에 큰 그림으로 선제적이고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도시는 유기체이다. 전체와 부분이 서로 연계된 가운데 어느 지역이 노후, 쇠퇴하는 동안 어느 곳은 재생, 발전되고 있다. 우리는 도시의 공간이용을 살아 숨 쉬게 조정해 나갈 수 있다. 계획적으로 안전화, 녹색화가 필요한 지역은 용적률을 극도로 낮추는 대신에 그에 해당하는 용적률을 첨단 역세권에 배당하여 직주근접(職住近接)의 편리함을 유도할 수 있다. 도시의 녹색화, ICT융합은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 건설산업이기도 하다.
코스모스의 어원은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세계’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도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가을 꽃, 코스모스와 같이 다양한 주거가 질서와 조화로 안전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지길 꿈꾼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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