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만으로도 가슴 아픈 사건들이지만 두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입양아라는 데 있다. 친모의 손을 벗어나 의지할 곳 하나 없이 홀로 학대를 당하다 뇌사 및 사망에 이른 것이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 사건들은 아동학대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구포천입양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는 지난 21일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두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은 대구 입양아 학대 뇌사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진행된 날이었다. 진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우리사회는 여전히 학대로부터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입양아동은 더 큰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일련의 두 사건에서는 입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입양기관과 법원 모두 입양부모에 대한 사전 철저한 교육이나 검증도 없었고, 학대 정황이 있음에도 입양기관이나 이웃이 신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처음 신고 받은 경찰도 무관심으로 사건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탓에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돌려보낸 사실 등 입양아동의 학대사망을 막을 수 있던 여러 지점들을 지나쳤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이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로서 경제만이 아니라 아동인권보장이라는 면에서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라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문제가 있었던 점을 밝히고 아동에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도록 개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로는 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입양관련 법률 제·개정 과정에서 입양기관 중심으로 업무를 위탁하려하고 있으며 입양아동의 인권·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이는 법적으로 입양결정에 대한 최종 권한이 있는 법원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경우 2000년 여덟 살 소녀 빅토리아가 친척의 학대로 숨졌을 때 조사단을 구성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당시 의회는 적극적인 조사활동을 벌였고 이후 2004년 아동법을 전면개정했다. 또 2007년 1살인 피터의 학대사망 이후 2008년 진상조사와 보고서를 통해 보완된 정책들을 제시했다.
미국 또한 학대로 인한 아동의 죽음을 꼼꼼히 되짚어 복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아동학대 방지를 전반적인 아동보호 정책의 출발로 보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2013년 울주아동학대사망사건이 발생한 뒤 민간에서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을 조사하고 아동학대예방을 위한 제안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보완되는 등 일부 제도 개선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와 정부는 여전히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적극적 대책이 부족한 현실이다.
특히 입양아동의 학대에 대해 우리사회의 관심이 미치지 못해 두 사건에서처럼 양부모나 입양기관은 ‘아동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핑계를 대는 등 혈혈단신으로 자신을 방어할 힘이 전무한 아동에게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고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아직도 이웃을 비롯한 사회전반적으로 아동학대가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 여성가족위원회 김삼화 의원(국민의당), 법제사법위원회 금태섭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아동인권 및 시민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 뿌리의집, 탁틴내일, 한국YMCA전국연맹,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 법률가단체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두루, 미혼모단체인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인 트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아동복지전문가인 아동인권실현연구자모임(대학교수)의 13개 단체가 연대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최근의 두 사건은 정부의 그 모든 대책에서도 구멍 뚫린 사각지대가 바로 입양 아동의 보호임을 보여준다”며 “구멍 뚫린 입양 관련법을 아동인권의 관점에서 철저히 재구성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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