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가 광화문을 떠나 여의도로 몰려간 까닭은 자명하다. 정치권에 대한 경고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는 여당뿐만 아니라 집권욕에 눈이 먼 야당에 대한 분노가 시위대의 발길을 여의도로 돌리게 했다. 시민들은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하며 당사에 날계란을 던졌다. 광주에 갔던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무대에 서지 못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는 대구에서 비난 뭇매를 맞아야 했다.
그제 촛불민심은 대통령 탄핵과 즉각퇴진에 모아졌다. 탄핵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하고, 그동안 자행된 국정농단과 불법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대통령이 자초한 잘못이 크다. 담화를 세 차례나 내놓으면서도 실정의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진퇴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버티기로 일관하다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박 대통령이 퇴진 일정을 밝혀도 민심이 가라앉을지 의문이다. 지난달 29일 발표한 3차 담화에서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안에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다”며 또 한 번의 담화 발표를 예고했다.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되풀이할 요량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예정된 9일까지 남은 5일간은 정치권의 운명뿐 아니라 나라의 앞날을 좌우할 분수령이다. 국가가 정상 궤도로 복귀할지, 아니면 긴 어둠의 터널로 빠져들 것인지 갈림길이 된다. 탄핵 표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비주류는 어제 비상총회를 열고 박 대통령 조기 퇴진을 위한 여야 협상을 촉구했으나 대통령이 조기 퇴진 일정을 밝혀도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9일 탄핵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지기로 했다. 야 3당은 대통령 입장 표명 여부에 관계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탄핵열차를 세우지 않겠다고 했다. 야당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탄핵 표결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민심을 직시하고 결단을 보여주는 것만이 국가를 위기에서 끌어내 정상화시킬 마지막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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