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자연스럽게 세대가 바뀌니 사회적 분위기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아파트 경비원을 지키기 위해 어린 학생이 나서고, 택배 아저씨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는 이웃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몸이 고달픈 일을 하는 많은 분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고 이웃이다. 나보다 하찮다고 여겨도 좋은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말자. 세상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힘들게 일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이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소중한 직업이고, 또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하는 직업이고, 생계수단이 될 수도 있다. 대리운전도 하나의 직업이다. 무시해서는 안 되고, 또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된다."(50대 주부 B씨)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밤. 일반 직장인들은 퇴근하는 무렵이지만 두꺼운 외투 차림으로 출근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저녁 술자리에서 흠뻑 취한 이들을 집에 데려다주는 대리기사들이다.
가족과 '저녁 있는 삶'을 포기한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되기만 하다.
대리기사 일을 2년째 하고 있는 김모(51)씨는 영하의 추위에도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지 못한다. 대신 쉴새 없이 ‘호출(콜)’이 울려대는 스마트폰을 쥔 채 수시로 확인한다.
돈벌이가 쏠쏠한 목적지를 알리는 콜을 놓치지 않으려면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칼바람에 스마트폰을 쥔 김씨의 손은 얼어만 간다.
김씨는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약 7시간 동안 일하면서 수도권 곳곳을 누빈다. 보통 오후 8시 출근해 다음날 오전 4시까지 강행군을 한다.
그는 "보통 하루에 손님들로부터 15만원 정도를 받는데, 수수료 20%와 교통·통신비 등을 떼면 10만원 정도 남는다"며 "한 달 평균 12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 번다"고 전했다.
◆가족과의 '저녁 있는 삶' 포기한 대리기사들
대리기사들은 무엇보다 밤낮이 바뀌는 업무라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한다.
여기에다 이들을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손님들의 '갑(甲)질'이 더해진다. 탑승하자마자 다짜고짜 욕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만취 손님이 가장 큰 '적(敵)'으로 꼽힌다.
주먹을 휘두르기까지 하는 는 등 대리기사를 '을(乙)'로 깔보고 막무가내로 구는 손님도 적지 않다는 게 대리기사들의 하소연이다.
대리기사들이 토로하는 애로는 비단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잠이 든 손님이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도 깨지 않으면 '시간이 돈'인 대리기사에게는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여자 손님이면 몸을 흔들어 깨울 수도 없어 더욱 곤혹스럽다고 한다.
대리운전 업체들이 여러 기사를 상대로 중복으로 콜을 해 늦게 도착한 이는 허탕을 치는 일도 잦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간혹 목적지를 속이는 손님도 있다. 목적지를 번화가로 하면 대리기사를 쉽게 부를 수 있고, 가격도 싼 만큼 실제로는 외진 곳으로 가면서 거짓말을 하는 때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외진 곳에 손님을 데려다주면 대리기사는 한참을 걸어 번화가로 나오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택시를 타야만 한다. 외진 곳에 내린 손님에게 추가 요금을 요구하다가 다툼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
업체가 우후죽순 늘어나 요금 낮추기 경쟁을 벌이면서 그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대리기사들에게 돌아갔다. 20%인 수수료는 그대로 둔 채 손님에게 받는 요금만 줄였기 때문.
대리기사들은 저녁 무렵 지인과 만나는 모임이나 가족과 식사는 꿈조차 못 꾼다. 설령 동창회 등 모임을 가도 일찍 나올 수밖에 없어 사실상 원만한 사회생활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 대리기사는 "인생의 실패를 겪고,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면서도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희망을 밝혔다.
다른 이는 “최근 갑자기 대리기사가 많아졌는데, 그만큼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 아니겠냐”며 “사회가 안정되고 경기가 회복돼 대리기사가 줄어드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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