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윤동주의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가 가장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인간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의 모든 시에서 나타나는 감수성은 바로 부끄러움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는 문장을 낳았다. 어떻게 하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질 수 있을까. 그런데 ‘서시’뿐 아니라 다른 시를 살펴보아도 윤동주가 정확히 무엇을 특별히 잘못했다는 고백은 찾을 수 없다. 나쁜 짓을 해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가 부끄러운 것은 아닐까’ 하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로 윤동주 시가 보여주는 부끄러움의 순수성이다. 내가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 나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부담이 된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질문하는 감수성이야말로 윤동주 시의 아름다움을 지탱하는 마음의 뿌리다.
정여울 작가 |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아픔을 느낀다. 내가 느낀 모든 기쁨, 내가 소중히 여긴 모든 기쁨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에.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기쁨을 추구할 때 혹시 내 기쁨이 타인의 기쁨을 해치지 않았는지 ‘뒤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그렇게 뉘우치고, 또 뉘우친 끝에 ‘서시’를 다시 읽으니 비로소 별을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시인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임을 알았던 것이다.
견딜 수 없는 미움이 사무칠 때 ‘서시’의 주문을 걸어보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자고.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자고.
정여울 작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