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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봄은 한창이다. 벚꽃잎이 팔랑이며 흐르는 계곡물에 떨어진다. 산그늘 목련은 청량산의 서늘한 기운 탓에 이제야 꽃잎을 몽글 벌리고 있다. 젊은 시절을 주로 서울과 외국에서 보냈던 친척 아재뻘이자 형의 친구가 있다. 암자와 같이 작은 그의 새집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노후를 도시에서 뿌리 내리는 대신 고향 가까운 안동 가송리에 자리 잡았다.

서울에서 잠시 내려온 부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김치찌개와 미나리전을 내놓는다. 요리 재료는 서울에서 사 왔단다. 인터넷으로 택배주문이 되기도 하고 택시가 외딴 이곳까지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는 바람도 쐬고 필요한 물건도 구할 겸 가끔씩 계곡다리를 건너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오는 버스를 타고 백리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로 나간다고 했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주 혁신도시를 들렀다. 기존 도시의 끝자락에 붙어 있었다. 오는 월요일부터 업무를 시작하게 될 국립공원관리공단을 마지막으로 계획된 12개 공공기관이 모두 다 이전을 마친 모양이다. 주말이라서인지 거리는 한산하다. 상가임대를 알리는 요란한 플래카드만이 봄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얼마 전 주말에 하루를 묵었던 나주 혁신도시가 생각났다. 역사의 숨결을 품은 기존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나선 아침 거리는 주중 동안 촬영을 위해 마련된 영화세트장과 같았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는 5171만명이며, 수도권이 2562만명으로 49.5%를 차지하고 있다. 15년 전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신행정수도 건설이 대선 공약으로 발표됐다. 우여곡절 끝에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변모해 건설을 착수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5년 전 총리실부터 시작해 55개 기관이 이전을 완료했다. 그러나 수도권 인구 집중률은 지금이 그때보다 오히려 높고, 서울 진출입을 둘러싸고 있는 교통체증도 그동안 생겨난 새로운 위성신도시로 인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우리는 이미 고령화사회이다. 가족단위의 주거행태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한편, 기술 발달로 곧 초연결사회에 들어서게 된다. 현재의 웹상에서 대화만 아닌, 가상현실 또는 홀로그램을 이용해 소통한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연결과 만남이 가능한 시대가 된다. 100년 전에 제안된 미국의 도시계획가 클레어런스 페리의 ‘근린주구’ 이론에 따라 초등학교 중심으로 지역 커뮤니티 조성을 노린 도시개발계획도 이젠 어울리지 않는다. 도심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으로 분화하면서 외연 확대가 이루어진다는 미국의 도시생태학자 어니스트 버지스의 ‘도시의 동심원 지대’ 이론도 용도를 하나하나 세분화하는 토지 이용 방법도 더 이상 맞지 않는 시대이다.

투표일을 2주 남짓 남겨둔 채 한창 대선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신도시 건설을 통해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는 없다. 이제는 신도시보다도 크고 작은 기존 도시를 새롭게 다듬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도시재생으로 노후화된 인프라와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줄 시기이다. 겹겹이 축적돼 있는 전통과 문화를 아름답게 되살려 내고, 4차 산업혁명의 혁신기술이 푹 융합되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곳곳에 있는 기존 도시가 새롭게 태어나면서 우리의 국토 공간은 초연결사회의 플랫폼이 되리라. 서로 주변 도시와 위계에 따라 물리적 네트워크가 보완되면서 일상생활은 훨씬 편리해질 것이다. 청량산 기슭에서 도시 사람들과 실감나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며, 강의조차 해볼 만하다. 그 미래에는 국토의 어디에서 살든 안전하고 풍요로운 생활에서 서로들 큰 차이가 없어질 것 같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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