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주년 제헌절인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설치 근거는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 제90조 제1항이다. 비록 헌법에 등장하지만 ‘둘 수 있다’고 규정한 만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처럼 반드시 둬야 하는 필수적 기구는 아니다. 실제로 노태우정부 시절 잠시 운영한 것을 빼고 김영삼정부부터 현재 문재인정부까지 역대 정권 중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둔 정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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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로자문회의가 존재한다면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의장은 직전 대통령이 된다’고 규정한 헌법 제90조 제2항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
헌법 제90조 제3항은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조직·직무 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해 그 구체적 내용을 법률에 위임했다. 다만 헌법과 달리 국가원로자문회의에 관한 법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이 있긴 했으나 노태우정부 집권 2년차인 1989년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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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전 대통령(왼쪽)은 후임인 전두환 대통령(오른쪽) 시절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지냈고, 전 전 대통령도 후임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은 5공 비리 등에 휘말려 의장에서 물러났고 그 뒤 국가원로자문회의는 아예 폐지됐다. |
국정자문회의는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국가원로자문회의로 이름만 살짝 바뀌어 살아남았다. 1988년 노태우정부가 출범한 뒤 헌법에 따라 직전 대통령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에 취임했다. 당시 국가원로자문회의는 사무처장을 국무위원(장관)급으로 보임하는 등 터무니없이 높은 직급과 커다란 조직 규모로 빈축을 샀다. 일각에선 전 전 대통령을 무슨 ‘상왕’처럼 받들려고 만든 기구 아니냐고 비난했다.
마침 전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의 심장재단 관련 비리, 동생 전경환씨의 새마을운동 관련 비리 등 5공 비리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며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 여론이 급격히 악화했다. 코너에 몰린 전 전 대통령은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1989년 3월29일 여소야대 국회는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을 아예 폐지해 버렸다. 이로써 국가원로자문회의는 헌법에 명백히 근거가 있음에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뿐인 기관이 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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