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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90조 '국가원로회의'는 왜 사문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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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7 10:55:37 수정 : 2017-07-17 10: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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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들어 국민경제자문회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 헌법에 근거를 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들의 운영이 활성화하는 모습이다. 다만 1987년 지금의 헌법이 시행된 이래 활성화는커녕 제대로 구성조차 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한 헌법상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가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국가원로자문회의’인데 앞으로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 새 헌법에선 이 자문기구를 아예 없애 버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69주년 제헌절인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설치 근거는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 제90조 제1항이다. 비록 헌법에 등장하지만 ‘둘 수 있다’고 규정한 만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처럼 반드시 둬야 하는 필수적 기구는 아니다. 실제로 노태우정부 시절 잠시 운영한 것을 빼고 김영삼정부부터 현재 문재인정부까지 역대 정권 중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둔 정권은 없다.

국가원로자문회의가 존재한다면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의장은 직전 대통령이 된다’고 규정한 헌법 제90조 제2항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헌법 제90조 제2항은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의장은 직전 대통령이 된다. 다만 직전 대통령이 없을 때에는 대통령이 지명한다’고 돼 있다. 만약 국가원로자문회의가 존재한다면 직전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의장을 맡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수감된 상태라 국가원로자문회의가 있다고 해도 의장 노릇을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헌법 제90조 제3항은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조직·직무 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해 그 구체적 내용을 법률에 위임했다. 다만 헌법과 달리 국가원로자문회의에 관한 법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이 있긴 했으나 노태우정부 집권 2년차인 1989년 폐지됐다.

최규하 전 대통령(왼쪽)은 후임인 전두환 대통령(오른쪽) 시절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지냈고, 전 전 대통령도 후임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은 5공 비리 등에 휘말려 의장에서 물러났고 그 뒤 국가원로자문회의는 아예 폐지됐다.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유래는 전두환정부의 제5공화국 헌법에 규정된 ‘국정자문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을 통해 정권을 잡아 정통성이 매우 취약했다. 이를 보완하고자 전직 대통령, 전직 국회의장, 전직 대법원장, 전직 국무총리 등 이른바 정계 원로들로 국정자문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그들의 고견을 듣는 형식을 고안해낸 것이 바로 국정자문회의다. 전 대통령 시절 국정자문회의 의장은 직전 대통령인 최규하 전 대통령이 맡았다.

국정자문회의는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국가원로자문회의로 이름만 살짝 바뀌어 살아남았다. 1988년 노태우정부가 출범한 뒤 헌법에 따라 직전 대통령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에 취임했다. 당시 국가원로자문회의는 사무처장을 국무위원(장관)급으로 보임하는 등 터무니없이 높은 직급과 커다란 조직 규모로 빈축을 샀다. 일각에선 전 전 대통령을 무슨 ‘상왕’처럼 받들려고 만든 기구 아니냐고 비난했다.

마침 전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의 심장재단 관련 비리, 동생 전경환씨의 새마을운동 관련 비리 등 5공 비리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며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 여론이 급격히 악화했다. 코너에 몰린 전 전 대통령은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1989년 3월29일 여소야대 국회는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을 아예 폐지해 버렸다. 이로써 국가원로자문회의는 헌법에 명백히 근거가 있음에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뿐인 기관이 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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