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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소리없이 퍼지는 외래종… 알아챘을땐 이미 생태계 ‘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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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26 06:00:00 수정 : 2017-10-2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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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 접수한 점령군 ‘가시박’ / 교란생물 지정 더딘 까닭은 / 국내 외래종 대책 ‘걸음마’
옛날이야기에서 ‘부지런함’을 담당해 온 개미가 ‘공포의 대상’으로 지난달 우리나라 부산항에 나타났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외래붉은불개미가 주인공이다. 다행히 이달 들어 추가 발견이 없고 외래붉은불개미의 위험성이 다소 과장됐다는 게 알려지면서 공포감은 누그러들었지만 외래종의 유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립생태원에 등록된 외래 동식물만 해도 2208종에 달한다. 이는 2011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외래생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경로는 다양한데, 외래붉은불개미처럼 어딘가에 묻어 들어오는 비의도적 도입도 있지만, 농업이나 식용으로 들어왔다가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퍼지는 의도적 도입이 더 많다. 지난 23일 서울 탄천에서 본 가시박도 그런 경우다.

◆‘식물계의 황소개구리’ 가시박

이날 탄천에서는 생태보전시민모임과 도심권50플러스센터가 함께 하천변 생태계교란식물을 조사하고 있었다. 수서역 인근 광평교에서 대곡교까지 2.6㎞ 구간에서 조사가 진행됐다.

처음 광평교 아래로 내려오자 활동가 이형근(62)씨는 “가시박이 나무를 덮은 걸 보면 꼭 방공호 위장막 같다”며 여기저기를 가리켰지만 멀리 봐서는 그저 우거진 수풀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금 걷다보니 ‘식물 까막눈’인 기자도 금방 알아볼 만큼 가시박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가시박 열매는 청바지도 뚫는 뾰족한 가시가 감싸고 있다. 이 때문에 초식동물이나 곤충도 가시박 열매를 먹지 못한다.
가시박은 열매에 밤송이같은 가시가 촘촘히 박힌 박과 식물인데, 덩굴식물답게 주변에 지지할 곳이 있으면 감고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 언뜻 봤을 때 잎이 무성한 줄만 알았던 나무는 가까이 보니 가시박에 칭칭 감겨있었다. 가시박이 땅에서부터 나무를 타고 족히 15m는 더 될 듯한 꼭대기까지 휘감고 있었다. 버드나무 10여 그루가 이씨 말처럼 누군가 위장막을 덮은 것처럼 한꺼번에 가시박으로 덮인 경우도 있었다.

활동가들을 이끌고 있는 김민수 생태보전시민모임 생물다양성팀장은 “가시박에 감긴 나무는 결국 햇빛을 받지 못해 고사된다”고 전했다. 덩굴손으로 휘감아 나무를 말려 죽인다니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라는 별칭이 과장은 아니었다.

지난 23일 서울 탄천에서 촬영된 버드나무의 모습. 나뭇잎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10여 그루의 버드나무를 뒤덮은 가시박 이파리다. 덩굴식물인 가시박은 주변 나무를 감고 올라가 결국 나무를 고사시킨다.
가시박은 생존력과 번식력도 대단해서 아기 주먹보다 작은 열매 하나에 300∼400개의 씨가 들어있고 씨는 7년까지 땅속에 숨어있다가 조건이 맞으면 언제든 싹을 틔운다.

김 팀장은 “하천 주위에 가시박이 급격히 늘어난 데는 하천의 범람 그리고 하천 개발로 토양을 뒤엎으면서 그 안에 있던 씨가 퍼져나간 것이 한몫했다”고 전했다.

하천변 한쪽에 있는 ‘생태하천’이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탄천 일대는 생태계교란식물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가시박뿐 아니라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미국쑥부쟁이, 가시상추 그리고 서울시유해식물로 지정된 환삼덩굴까지 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교란식물이 하천변을 ‘접수’한 상태였다.

◆전문가도 헷갈리게 만드는 ‘잠복기’

가시박은 1990년 전후 수박의 대목(접붙이기용 나무)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그러나 하천 곳곳을 점령하며 심상찮은 기세를 드러낸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그리고 2009년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됐다.

국내 유입부터 교란생물 지정까지 약 20년이나 걸린 까닭은 많은 침입종이 사람들이 알아챌 만큼 확산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를 ‘지연시간’이라고 한다. 독일의 한 연구에서는 커다란 교목의 경우 평균 지연시간이 170년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뉴트리아도 마찬가지다. 1985년 모피와 식용으로 도입돼 한때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가축 인정까지 받았지만 ‘쥐를 먹는다’는 심리적 거부감으로 별반 인기를 끌지 못했다. 사육농장이 문을 닫으면서 생태계로 풀려나오기 시작했고 2009년에야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됐다.

의도적으로 도입한 외래종조차 생태계의 문제아로 본색을 드러내기까지는 마치 잠복기처럼 10년 이상의 지연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유영한 공주대 교수(생명과학)는 “외래종이 실제 생태계에서 눈에 띄는 교란을 일으기기 전까지는 학자들도 알아채기 어렵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외래종을 도입할 때부터 체계적이고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외래종 관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

외래종은 천적이 없거나 포식력, 번식력이 강할 때 토착종을 밀어내고 우점종이 된다. 때로는 보다 은밀한 방법으로 세를 확장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식량원이자 사냥 조류였던 청둥오리는 원래 북반구가 고향이다. 그러다 유럽인의 호주, 뉴질랜드 이주가 시작되면서 남반구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청둥오리가 남반구 토착종인 뉴질랜드 회색오리, 호주 검은오리 등과 짝짓기를 하면서 벌어졌다. 토착종에 청둥오리의 유전자가 섞이고, 이런 잡종세대가 다시 토착종과 짝짓기를 하면서 고유종이 점점 설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류 중에 이 같은 사례가 많다.

이처럼 외래종은 한번 유입되면 확실한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진입장벽을 높이는 게 최선의 대책이다.

과거 수백년간 외래종 유입으로 심각한 생태계 피해를 경험한 뉴질랜드는 외래종을 유입할 때 ‘화이트리스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모든 외래종은 ‘무죄라고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죄’라고 보고 생태계 위해가 없는 확실한 종들(화이트리스트)만 유입을 허가하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1996년 무역장벽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규정을 만들어 1998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래생물 대책은 이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외래생물 관리계획은 2014년에야 시작돼 아직 1차(2014∼2018년) 기간이 끝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당초 계획만큼의 예산이 투입되지 않았다.

생태계교란생물 모니터링의 경우 2014∼2017년 사이 7억6100만원(2018년까지는 9억6100만원)이 예정됐지만 실제로는 5억8700만원(계획 대비 77.1%)만 배정됐다. 같은 기간 7억6300만원을 쓰려던 외래생물 정밀조사에는 6억5300만원(85.6%), 퇴치사업 및 홍보에는 76억3000만원(55.5%), 생태계 위해성평가로는 7억6000만원(69.1%)이 쓰였을 뿐이다.

‘유죄가 확실한’ 특정 외래종의 유입만 막는 ‘블랙리스트’ 방식을 약 1000종의 의심종(유입주의 생물)까지 차단하는 ‘그레이리스트’로 바꾸는 개정안은 지난 5월에야 제출됐다.

1차 관리계획에 따라 국가생물다양성위원회 내 외래생물관리실무위원회도 신설(2015년 말)됐지만 정작 이번 외래붉은불개미가 발견됐을 때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회재난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가 위원회에 포함돼 있지 않아서다.

부처별로 위해종을 따로 관리하는 것도 문제다.

권오석 경북대 교수(응용생명과학)는 “뉴트리아, 블루길, 황소개구리는 모두 농식품부에서 식용으로 활용하려고 들여온 것”이라며 “지금처럼 외래종 평가는 환경부, 외래종 유입통로인 검역은 농식품부 이렇게 이원화된 구조에서는 서로 책임만 전가할 뿐 제대로 된 관리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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