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지시를 친필명령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 시험발사를 참관하며 환호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
하지만 국제사회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세 차례나 발사했지만 제재가 완화될 기미는 없고 더 강화될 조짐만 보인다. 사거리 1000㎞ 미만의 단거리부터 5000㎞를 넘나드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까지 계속 쏘면서 위협했지만 돌아온 것은 해상봉쇄 등 군사적 조치 직전의 압박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가 지난달 29일 평안남도 평성 일대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달 29일 새벽 북한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는 김정은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에 상응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지난 7월 화성-14 ICBM은 고도 2802㎞까지 올라갔다. 이번 발사에서 화성-15는 4475㎞ 고도까지 상승했다. 4개월만에 최고고도를 1600여㎞ 높인 것이다. 추정되는 최대 사거리도 1만3000~1만4000㎞에 달한다.
화성-14 1단 로켓이 주엔진 1개에 보조엔진 4개를 장착했다면 화성-15는 주엔진 2개만 장착됐다. 화성-15는 보조엔진으로 방향을 변경하는 방식 대신 엔진 배기구의 각도를 조절해 미사일 비행 방향을 바꾸는 짐벌(gimbal)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2단 로켓도 직경이 두꺼워진 것으로 볼 때, 주(主)엔진에 보조엔진 4∼6개를 단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지난 29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왼쪽)와 7월 발사한 ICBM 화성-14형(오른쪽). 연합뉴스 |
국방부는 북한이 지난달 29일 새벽 발사한 `화성-15형`을 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으로 평가했다. 국방부는 "화성-15형은 화성-14형 대비 미사일과 TEL(이동식발사차량) 길이가 각각 2m 증가했고, 1·2단 각 1m, 직경은 0.4∼0.8m 증가했다"면서 "1단 엔진은 화성-14형 엔진 2개를 클러스터링(결합)했고, 2단 엔진은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또 "2단 몸체가 화성-14형 대비 약 3∼4배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
북한은 화성-15 발사를 통해 미국을 언제, 어디에서든 타격할 수 있다는 기존 주장을 다시 부각시켰다.
하지만 북한의 주장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술의 발전은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급격한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과 러시아가 현재의 ICBM 기술을 확립하기까지는 수십년이 필요했다. 반면 북한은 ICBM 시험발사를 시작한 지 4개월만에 ICBM 기술 확보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무수단을 8차례 발사했으나 1번만 성공했던 북한이 1년 사이에 미국, 러시아와 기술수준이 동등해졌다는 주장에 신빙성을 부여하기 어렵다.
북한의 화성-15도 그 능력이 과장된 측면이 강하다. 우선 탄두중량 문제가 거론된다. 탄두의 무게에 따라 미사일 비행거리는 수천㎞ 차이가 날 수 있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화성-15의) 탄두중량을 600㎏으로 가정하면 비행거리는 1만㎞, 100~200㎏으로 가정하면 1만~1만4000㎞”라고 추정했다. 이는 탄두부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발사할 경우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비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고, 실제 탄두를 장착하면 알래스카 정도만 공격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이 화성-15를 발사하면서 탄두부에 아무것도 채워넣지 않는 방식으로 비행거리를 최대로 늘렸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기권 재진입체도 마찬가지다. IRBM 화성-12와 ICBM 화성-14, 15 등 사거리 3000㎞이상의 탄도미사일 재진입체는 모두 그 모양이 달랐다. 비행거리를 최대치로 높이는데 집중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과 달리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아직도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실제로 시험한 것이 지난해 무수단 발사부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술 확보에 난항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높은 고도에서 핵탄두를 터뜨려 전자기펄스(EMP) 공격을 가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대기권 재진입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어느 정도 고도까지는 진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는 필요하다.
당초 북한이 취할 것으로 예상된 행동은 화성-15 발사보다 더 강력한 것이었다. 9월 22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뉴욕 유엔총회에 참석하면서 김정은의 ‘초강경 조치’에 대한 질문에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태평양 상에서 하는 것으로 되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이후 북한이 수소탄 탑재 ICBM을 고각(90도 가까이)이 아닌 정상각도(30~45도)로 발사해 태평양 상공에서 터뜨리는 실험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북한은 기존과 같은 방식인 고각발사로 화성-15를 쏘아올리고 “핵능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했다. 정상각도로 발사해 공중에서 핵탄두를 폭발시키거나 실제 사거리만큼 발사해 탄착시켜야 실질적인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ICBM 핵심기술을 공개하고 고각발사를 수차례 진행한 상황에서 화성-15의 고각발사는 미국에 큰 압박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화성-15 발사 직후 북한이 직면할 현실은 이전보다 더욱 어렵다. ICBM 능력 확보를 인정받으려면 정상각도에 의한 실거리 발사가 필수다. 하지만 동쪽으로 실거리 발사를 할 경우 미국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남동쪽으로 발사하면 일본과 대만, 필리핀, 호주 등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된다. 예전처럼 고각발사만을 고집하면 전략적 압박 효과는 떨어지고 대기권 재진입과 핵탄두 기폭장치 등 핵심기술 검증도 하지 못한다. 이러는 사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 맞설 여력이 고갈되어 시간에 쫓기면 북한은 ICBM 능력을 과장하며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조선중앙TV가 30일 방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의 전날 발사 영상에서 미사일이 수직으로 들어 올려진 뒤 이동식 발사차량(TEL)이 떠나고 있다. |
이렇게 되면 북한으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미국을 더 강하게 압박하기에는 ICBM 기술에 한계가 있고, 비핵화로 나설 경우 김정은 체제의 위신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단기간 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내부 동요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 원인은 김정은에게 있다. 기술 발전 속도는 거북이처럼 느린데, 미국을 굴복시켜 대국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김정은은 치타처럼 빠르게 움직이다 국제사회의 전방위 압박에 직면하고 말았다. 아버지 김정일이 미사일 발사 횟수를 최소화하며 숨고르기를 해 시간을 벌고 경제난 극복에 필요한 지원을 이끌어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무력시위를 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미국을 상대로 도발과 협상을 병행했던 아버지의 인내심과 정략 대신 강성대국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허영심과 야심에 가득 차 치밀한 전략을 세우지 않은 채 미사일 발사에만 집중했던 아들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을 압박할 새로운 카드를 찾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아버지보다 못한 아들의 한계가 집권 5년 만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