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불명의 폐선과 바다에서 영성을 일깨웠던 돌미륵의 만남은 정현 작가의 작품이 됐다. 바다를 건너온 돌미륵과 폐선은 우리 시대의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의 표상이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관계의 역사를 들춰내 보여주는 듯하다. 오는 7월 22일까지 제주 예술공간 ‘이아’(센터장 이경모)에서 열리는 ‘부재(不在)의 기술(記述)’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전시는 이같이 규정되지 않았거나 무지나 무시, 편견 등에 가려진 것들에 몫을 부여하는 작업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우리는 왜 예술을 하는가. 미술품 전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에는 고승욱 김기민 김승영 김유석 김창겸 김태준 김해민 김해인 문소현 박선영 배수영 서성봉 손지훈 송은서 안형남 육근병 오봉준 이소영 이지유 정현 등 한국작가 23명과 포르투갈 홍콩 영국 폴란드 터키 중국 카메룬 등 외국작가 9명도 참여한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작가들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 신촌리 사람들의 당신(은진미륵) 모시는 모습을 담은 사진영상을 폐선 위에 비추고 있는 정현 작품. 폐선과 당신에게 새로운 사유(감각)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
미학이 새로이 감각된 경험들을 분배하는 체계라는 얘기다. 그러기에 때론 위험하지만 풍요로운 사유의 움직임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발견들이 오늘의 예술가들에게 요청된다는 것이다. 랑시에르 감성론의 맥락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익을 계속 창출해야 하는 도시화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중국작가 뤼양의 작품도 이를 잘 말해준다. 그는 우리가 그저 건물의 호황을 즐기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시건설로 끊임없이 건설되고 파괴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황폐화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더라도 공기, 물, 대지의 변화를 걱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는 도시화의 무한 복제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미세먼지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끝나지 않는 악몽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당장 보이지 않는다거나 해결책이 없다고 그저 눈을 감고 ‘대안 없음’을 선언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행위라고 일갈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보이지 않는 것에 존재를 부여할 때, 다시 말해 몫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오도록 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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