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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성범죄 2차 피해 인식 부족… 피해자 보호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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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2 19:44:36 수정 : 2018-06-22 23: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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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경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 성폭력 피해자 지원위원장 맡아/ 소속 변호사들과 법률상담 지원/ 항거불능 입증 까다로운 강간죄/‘비동의 간음죄’ 신설 필요한 이유/ 폭로 후 불이익 무관심해선 안돼/ 몰카 등 처벌 강화… 법 허점 막아야
차미경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이 지난 14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갖고 성범죄로 고통받는 여성 보호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성범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피해를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차미경(51·사법연수원 33기)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 부회장이 성범죄 예방책을 묻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15년차 법조인인 그는 올해 초 여변 부회장에 선임됐다.

“성범죄 예방은 사실 어려워요. 피해자들이 언제, 누구한테, 어떻게 당할지 모르니까요. 대신 범죄를 당했을 때 용기를 내 피해를 알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그동안은 성범죄로 인한 1차 피해 방지에 집중했다. 피해 여성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겪는 수치심, 성범죄 폭로에 따른 직장 내 차별 등 2차 피해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차 부회장은 여변에서 ‘성폭력 피해자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위원회는 소속 변호사 30명이 전국의 성범죄 피해자를 상대로 법률상담을 한다.

“성범죄에 따른 1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는 많이 개선 됐어요. 다만 2차 피해는 아직도 손을 못 쓰고 있죠. 상담을 하다 보면 직장 내 성범죄 피해를 폭로했다가 다른 부서로 전보되는 등 되레 불이익을 보았다는 사례를 종종 들어요.이제 성범죄를 당했을 때 어떻게 사람들한테 알릴 것인지가 중요해졌어요.”

그는 현행 강간죄와 별도로 상대방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를 처벌하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강간죄에서 ‘폭행’과 ‘협박’의 인정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는 것이다.

“가해자들한테 유리한 프레임이 생겨나는 이유가 바로 ‘합의 하에 이뤄졌다’는 것이죠. 대법원은 강간죄 성립에 필요한 폭행, 협박을 ‘항거불능’의 상태로 봐요. 항거불능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피해자가 법정에서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겁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회가 나를 보호하지 않는구나’ 하고 느낄 수밖에 없죠.”

차 부회장은 최근 확산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오히려 남성들에게 주어진 무거운 권한과 책임을 내려놓을 기회라고 설명했다. “미투 운동은 성범죄 피해만 말하는 게 아니에요. 여성이 사회적 소수자로 살며 당한 여러 피해를 더는 참지 않겠다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가부장적 사회를 유지하며 남성들에게만 권한과 책임을 지웠는데 이제는 그런 것을 다 내려놓자는 겁니다.”

여변은 요즘 몰래카메라 등 디지털 성범죄에 관심이 많다. 최근 여성가족부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아직 사회적 방어가 부족해요. 여성들 입장에선 수사·재판 주체가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 대처하길 바라지만 수사·재판을 하는 분들과 시각차가 있어 빨리 해소가 안 되는 거죠.”

그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디지털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등 법의 허점을 서둘러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성폭력범죄처벌법 14조는 몰카 범죄의 성립 기준으로 ‘성적 욕망’, ‘수치심 유발’ 등 애매모호한 요건을 들고 있다. 이렇다 보니 당사자 의사에 반하는 신체부위 촬영도 종종 무죄가 선고된다.

“자기 신체가 찍힌 것을 뻔히 아는데 처벌할 수 없다는 건 피해자 입장에서 끔찍합니다. 양형도 세져야 해요.”

비록 국회 문턱을 못 넘고 폐기되긴 했으나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에는 ‘국가는 성별 또는 장애 등으로 인한 차별 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이 정도로는 남녀차별 해소에 미흡하다는 게 차 부회장의 생각이다.

“현 대법관 13명 중 여성은 3명밖에 안 돼요. 사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하위 수준이고요. 앞으로 다시 개헌을 하게 되면 성평등이 실질적인 실현되도록 하는 국가 의무를 신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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