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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의사람In] 폭력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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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31 20:58:42 수정 : 2018-08-31 20: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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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부모로부터 매를 맞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세 살 때 돌아가셨으니 그럴 시간이 없었고, 어머니는 말로도 윽박지르는 일이 없었다. 처음으로 타인의 물리력을 경험한 것은 학교에서다. 교실 뒤쪽에 두 팔을 쳐들고 섰거나,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도는 아이는 어느 학년에나 늘 있었다. 단체기합과 체벌도 ‘사랑의 매’라는 명분 아래 당연한 듯 가해졌다. 수위 조절에 실패하거나 명분 무색한 폭행으로 빗나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P선생은 예측불허,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이닥쳐서 60명이 넘는 여학생의 뺨을 차례로 때리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비극은 우리 중 누구도 그날 맞은 이유를 몰랐다는 것이다. 더 엽기적인 상황은 피할 틈 없이 복도에서 P선생과 맞닥뜨렸을 때다. “아까 넌 내가 살살 때렸어.” 와중에 편애(?)했음을 알아 달라니. P선생의 손바닥이 내 뺨에 닿았을 때보다 백배는 더 불결하고 꺼림칙한 오물감에 진저리를 쳤다.

한 번은 잘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맞았다. 명동의 고전음악감상실 입구 계단참에서였다. 그곳을 찾는 사람은 대개 출석률이 높은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얼굴이 익게 마련인데, 마침 그렇게 낯만 겨우 익힌 한 남자가 계단을 올라오고 나는 내려가는 중이었다. 얼핏 술 냄새가 났던가. 그가 내 팔을 잡아채더니 다짜고짜 뺨을 후려쳤다. 나는 항의 한마디 못하고 황급히 도망치는 쪽을 택했다. 더 큰 곤경에 처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조차 뒤에 든 감정이고, 그 당장에는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의 날벼락이 약과에 불과하다는 것은 훗날 여러 지인의 고백을 듣고 나서 알게 됐다. 의외로 다수가 그보다 더한 봉변의 기억을 묻어두고 있었다.

모든 물리적 폭력과 폭력적 정황을 혐오하거니와, 묻지마폭력이나 데이트폭력으로 약자 또는 여성이 상해를 입거나 살해당하는 기사가 뜰 때면 속에서 불덩이가 치밀어 오른다.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의 감정만은 아니다. 그 야비한 폭력이 돌멩이나 깡통을 걷어차는 따위의 분풀이처럼 태연히 발생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 나는 그 정도에서 그쳤으니 운이 좋았던 거로구나.’ 이렇게라도 안도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기 때문이다. 제발, 대낮의 초인종소리에도 흠칫 놀라지 않기를 바라건만….

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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