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론적으로 A씨의 이혼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이혼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위 사례와 같이 부부 중 이혼에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가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즉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중 어느 쪽을 채택하느냐가 관건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기본적으로 상대 배우자의 유책이 인정돼야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책주의는 과거 바람을 피운 남편이 경제 능력이 부족한 부인을 버리는 사례와 같은 축출이혼을 막기 위해 마련된 법 조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일반의 인식이나 사회·경제적 환경이 변하면서 파탄된 가정을 강제로 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 사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유책주의의 상대적 개념으로 여겨지는 파탄주의가 있습니다. 파탄주의란 이혼 소송 시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묻지 않고,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면 인정하는 제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유책 배우자가 제기한 이혼 소송도 받아들이는 것이죠. 독일과 미국의 몇몇 주는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따로 살면서 서류상으로만 유지되는 무의미한 혼인관계를 청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위 사례에 관해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며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민법 840조 6호 이혼 사유에 관하여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아니하는 종래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대법원은 기존 판례에 입각해 다음과 같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는 경우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유책 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약화돼 쌍방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졌을 경우 등입니다.
대법원은 재판상 이혼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 840조의 해석에 따라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유책주의 법리를 확립했습니다. A씨가 B씨와 별거하면서 양육비로 1억원 정도를 지원했으나, 이것만으로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인정할 정도의 상쇄 요소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혼 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중 어떤 쪽을 취할 것인지는 여전히 치열한 논쟁의 대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유책주의를 취하는 것이 사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타당하다고 여기고 있으나 하급심에서는 파탄주의에 기한 이혼 판결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본 판례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불허했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유책성 상쇄의 정도에 대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이응교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ungkyo.yi@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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