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투자목적회사(SPC) 그레이스홀딩스가 지난 15일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 9%를 매입 공시하며 단번에 2대 주주에 올랐다. 그레이스홀딩스는 강성부 전 LK투자파트너스 대표가 설립한 기업지배구조전문투자회사 KCGI가 만든 KCGI제1호사모투자 합자회사가 최대주주인 SPC다.

한진칼은 대한항공(지분 29.96%), 진에어(60%), 칼호텔네트워크(100%), 한진(22.2%) 등을 보유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다. 한진칼의 대주주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으로 본인의 지분 17.84%를 포함해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2.3%),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2.3%),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2.3%) 등 특별관계인 지분이 28.95%다. 그 밖에 국민연금 8.35%, 크레디트스위스 5.03%, 한국투자신탁운용 3.81% 등이 주요주주다. 나머지 37.98%는 개인투자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레이스홀딩스가 기존의 국민연금이나 투자회사의 우호 지분을 바탕으로 표 대결에 나설 경우 조양호 회장 일가의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위해 올해 출범시킨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내달 첫 회의를 열고 한진칼에 대한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지분율 37.98%에 달하는 개인주주 등이 강 대표에게 의결권을 위임할 경우 그 파장은 더 커질 수 있다. 소액주주들의 움직임도 변수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조 회장 자녀들의 잇따른 ‘갑질’ 논란과 조 회장의 27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 재판이 맞물리면서 소액주주들이 그레이스홀딩스의 우호 세력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진그룹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조 회장은 KCGI의 지분 매입 일주일 전, 자신의 주식 일부를 담보(2.54%, 150만주)로 KEB하나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지난 8일 종가 기준으로 약 330억원으로 예상된다. 추가 지분 확보의 실탄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국내 증권사와 회의를 열고 대응방안 마련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짧게 답했다.
증권가에서는 KCGI가 한진칼의 이사진을 교체하며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진칼 이사회 7명 중 이사 3명과 상근감사 1명은 임기 만료가 내년 3월로 예정돼 내년 주총에서 이사회 장악을 위한 이사진 교체를 시도할 것”이라며 “이사회 장악 후에는 한진칼의 적자 사업부 정리를 위한 호텔 및 부동산 매각, 계열사 경영 참여 시도 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송치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형 주주행동주의의 서막이 열렸다”며 “과거 현대시멘트 인수나 요진건설산업 지분인수 등으로 큰 성공을 기록한 강성부 대표에게 최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금이 몰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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