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8일 헌법재판소는 이런 내용의 헌법소원 청구서를 접수했다. ‘비리 혐의로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이 무슨 국민 기본권을, 어떻게 침해했다는 건가.’ 의아하게 여긴 헌법재판관들은 청구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청구인 문모씨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청구서에서 “이 전 대통령이 나를 정신병원에 감금하도록 한 후 폭행과 약물 주사로 고통을 줬다”며 “그로 인해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을 침해당했다”고 설명했다.
얼핏 정신질환을 앓던 시청자가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폭로’한 사안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헌법소원 청구인이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 주장을 하지 않고 막연하고 모호한 주장만 하는 경우 그 청구는 부적법하다”며 “문씨는 자신의 기본권 침해 원인이 무엇인지, 또 그로 인해 자신의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되었는지 구체적 주장을 하지 않고 막연하고 모호한 주장만 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종교적 병역거부 인정 취지 결정 등으로 헌재의 위상과 권위가 드높아지면서 이처럼 다소 ‘황당한’ 헌법소원 청구도 쇄도해 재판관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헌재는 지난해 11월 A씨가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낸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A씨는 헌법소원 청구서에서 “문 대통령이 계속 노숙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또 국정농단을 빌미 삼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감시키는 등 잘못이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A씨 주장을 “막연하고 모호한 주장”이라고 일축한 뒤 “A씨 본인의 기본권이 침해된 바 없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9월에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각각 넓은 구치소 독방에 수감한 것은 다른 재소자들의 기본권 침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을 헌재가 각하해 화제가 됐다.
B씨는 헌법소원 청구서에서 “전직 대통령들에게만 널찍한 독방을 제공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특혜로,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주장을 폈으나 헌재는 “그렇다고 해서 B씨 본인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된 것은 아니잖은가”라며 청구를 각하했다.
대통령이 전직 헌재소장과 재판관에게 훈장을 수여한 일을 문제삼은 헌법소원도 있다. 헌재는 지난해 1월 C씨가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관여한 박한철 전 헌재소장, 이정미 전 재판관에게 훈장을 수여한 행위가 나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침해했다”며 낸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당시 헌재가 내놓은 결정문은 간단명료했다. “그들이 훈장을 받았다고 해서 C씨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이 없으므로 기본권 침해 여지도 없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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