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대해 사과한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법정을 찾은 11일 5월 단체 회원 이지헌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사과를 촉구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다소 떨리고 표정은 격앙돼 있었다.
이날 피고인 전씨와 마주한 광주시민과 5월 단체들은 격앙된 반응을 감추지 않았다. 5월 단체 회원들은 이날 오전부터 ‘5·18의 진실을 밝혀라’, ‘사죄하라’, ‘참회하라’, ‘구속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법원 주변에서 인간 띠 잇기를 시도했다. 전씨가 예상보다 1시간가량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거대한 인간 띠 잇기 퍼포먼스는 무산됐다.
전씨가 탄 차량이 광주지법 후문에 이르자 5월 단체 회원 100여명은 손팻말을 흔들며 사죄를 촉구했다. 5월 어머니 회원 김순심씨는 “전씨 얼굴이 저렇게 반들반들한데, 치매가 웬 말이냐”며 “사과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바로 앞에 있는 한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창문을 열고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쳐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전씨 법정 출석 전 광주시민들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했다. 5·18역사왜곡처벌 광주운동본부가 사전에 당부한 과격한 대응을 자제하자는 방침이 큰 역할을 했다. 광주운동본부 원순석 대표는 “재판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광주시민들은 매도당할 것이 분명하다”며 “개인적인 감정은 최대한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급변한 것은 전씨가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분노한 광주시민들은 전씨가 법원 건물 밖으로 나오자 들고 있던 우산이나 생수병 등을 던지기도 했다. 전씨는 취재진과 경호 인력이 뒤섞이는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밀치다가 겨우 차량에 올라탔다. 전씨를 태운 차량이 경찰 경호 속에 서서히 움직이자 “지나가려면 나를 밟고 가라”며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운 시민도 있었다.
한 60대 여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광주까지 와서 뻔뻔스럽게 변명만 하다 간다니 분노를 넘어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시민 김일수(42)씨는 “내심 전씨가 사죄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오늘 법정에서 있었던 말을 듣고 보니 괜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20분쯤 광주지법을 떠난 전씨 일행은 이날 오후 늦게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들러 30분쯤 머물다가 오후 8시52분 연희동 자택에 도착했다. 전씨는 오전에 집을 나설 때와 비교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호원의 부축을 받지는 않았지만, 허리 쪽을 잡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광주=한현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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