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상정)에 합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의 기소 대상에서 국회의원들이 제외돼 ‘셀프 혜택’이란 지적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선 당초 구상했던 안보다 후퇴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묻어나는 분위기다.
23일 여야 4당이 추인한 공수처 합의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대통령 친인척·국회의원·판검사 등이 포함된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해 수사권과 영장청구권을 갖지만 기소권은 판사, 검사, 경찰 경무관급 이상만 행사할 수 있다. 합의안 대로라면 기소 대상은 대략 7000명 정도로, 이 가운데 판검사와 경찰 경무관급 이상(총 5100명)에 대해선 공수처가 기소권도 갖게 된다. 나머지 국회의원과 대통령 친인척 등 1900명은 공수처가 수사만 가능하며 실제 재판에 넘길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기존대로 검찰에 맡기게 된다.
애초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공수처에 국회의원과 청와대 고위직 등 고위공직자 등에 대한 수사·기소권을 모두 부여할 방침이었지만, 정당 간 협상 과정에서 한 발 물러선 셈이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의원총회 등에서 “수사·기소권을 완전히 갖는 공수처를 관철하지 못해 협상한 원내대표로서 의원과 국민께 송구하다”며 “저는 넣자고 주장을 끝까지 했는데, 나중에 개선해나가면 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공수처 법안의 기소 대상에서 국회의원들이 제외된 것에 대해 ‘셀프 혜택’이란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기도 한다. 이는 2016년부터 시행된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서 국회의원이 제외된 것과 비견되기도 한다. 당시 국회는 김영란법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원 사익 추구와도 연관이 있는 ‘이해충돌 방지’ 부분을 삭제해 비난을 산 바 있다.
결은 다르지만, 청와대와 민주당 일각에서도 당초 공수처 방안보다 후퇴했다며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묻어난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국회에서 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방문한 뒤 기자들을 만나 추인된 합의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 기능 중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견제가 빠진 것을 안타까워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문 대통령은 전부터 공수처가 대통령 친인척을 견제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안타까워해 왔다”며 “문 대통령은 앞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를 살펴볼 듯하다”고도 했다. 강 수석은 이에 대해 일부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공수처의 핵심은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감시로, 문 대통령도 이전부터 이를 강조했기 때문에 이를 아쉬워하리라는 것이 제 생각”이라며 “이는 저의 개인적 생각일 뿐, 문 대통령이 이번 4당의 합의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이 대표도 앞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선거법을 우리가 많이 양보하면서 기대했던 것에 많이 못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상대가 있고 협상을 해야 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은 일각의 우려에 대해 공수처가 국회의원들의 비리 등에 대해 수사할 수 있는 데다가 설령 공수처에서 수사한 국회의원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하더라도, 공수처가 법원에 재정신청할 권한을 줬기 때문에 기능과 역할에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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