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30일 아키히토(明仁·86) 일왕이 퇴위하고 다음날(5월1일) 장남인 나루히토(德仁·59) 왕세자가 왕위에 오른다. 나루히토 신일왕의 연호가 될 레이와(令和) 시대에는 일본에서 여성 일왕 인정 논의가 재점화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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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에서 여성 일왕이 8명 있었으나 현재 왕위계승 등을 규정한 법률인 왕실전범(典範·일본 명칭 황실전범)에 따르면 왕위는 남성만이 계승할 수 있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결혼 시 아예 왕족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왕족은 양자 입양도 안 된다.
아들이 없는 나루히토 왕세자가 즉위하면 왕위 승계 서열 1위는 현 일왕의 차남이자 왕세자의 남동생인 후미히토(文仁·54) 왕자, 2위는 후미히토 왕자의 외아들인 히사히토(悠仁·13) 왕손자가 된다. 후미히토 왕자는 내년 4월19일 왕위계승 서열 1위를 뜻하는 왕사(王嗣·일본 명칭 황사)에 정식 책봉돼 왕세제(王世弟)로서 활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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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왕실 남성이 극소수라 왕실전범을 고수할 경우 안정적인 왕위계승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왕족 18명 중 남성은 5명에 불과하다.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면 동생인 마사히토(正仁·84·후사 없음) 친왕은 고령이고, 나루히토 왕세자와 후미히토 왕자가 비슷한 연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왕실의 차기는 히사히토 왕손자 한 명뿐인 셈이다. 후미히토 왕자는 2017년 6월 “형님이 80세 때 나는 70대 중반이다. 그래서 (왕위계승은)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6일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히사히토 왕손자가 앉는 교실 책상에서 ‘식칼 창’이 발견돼 비상이 걸렸다. 이날 낮 12시쯤 헬멧을 쓰고 위아래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공사 때문에 왔다고 학교를 방문한 뒤 책상 위에서 막대에 식칼 2개가 묶여 창처럼 된 흉기가 발견됐다. 용의자가 왕손자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학교 내부 사정에 밝은 일왕제 반대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 현 일왕의 즉위 관련 축하 행사가 열린 1990년에도 왕실 관련 시설에 박격포탄 공격이 감행되는 등 일본 전역에서 크고 작은 사건 143건이 일어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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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왕손자에게 위해가 발생할 경우 안정적인 왕위 승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레이와 시대에 남성 중심의 왕위계승 문제와 함께 여성 왕족이 결혼 시 지위를 상실하는 것과 같은 남녀차별 문제가 부상할 수 있는 것이다.
2000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에서는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아들이 없자 여성의 왕위계승을 인정하는 왕실전범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되기 전 2006년 왕손자가 출생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이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나루히토 왕세자의 외동딸인 아이코(愛子·18) 왕손녀가 서열 1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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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은 여성 일왕에 대해 우호적이다. 올해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76%가 찬성했다. 반면 극우보수 세력은 남성 일왕에 집착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남성 중심의 왕통(王統) 유지를 주장하며 여성의 왕위계승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여성 일왕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정리한 소노베 이쓰오(園部逸夫) 전 최고재판소 판사(대법관)는 “2006년 1월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전문가회의에서 3월에 여성 일왕을 인정하는 왕실전범 개정안을 제출한다고 말하자 아베 관방장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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