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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의 ‘잊힌 거장’… 고국 사랑 화폭에 담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입력 : 2019-06-08 10:00:00 수정 : 2019-06-07 18: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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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수연산방에 앉아 떠올린 이름, 변월룡 / 표현력 탁월했던 ‘서양화의 선구자’ / 리얼리즘 초상화 전통 현대적 계승 / 신분·인종 구분 없이 따듯하게 그려 / 생애 대부분 러시아서 보낸 고려인 / 공산주의 혁명·세계대전 등 격동기 / 한국과 러시아 경계에 서서 겪어내 / 北 파견시절 귀화 거부로 배척당해 / 러 돌아간 뒤에도 평생 소수자의 삶 / 말년엔 고국의 자연 작품으로 남겨

#수연산방에서 떠올리는 이름들

봄과 여름 사이의 시간이 찾아오며 즐기기 시작한 일은 저녁 나들이다. 해질 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낮의 열기가 모두 가시며 몸만큼 마음도 산뜻해진다.

얼마 전에는 저녁 산책을 하다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에 갔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이맘때쯤 가장 좋아하는 저녁 풍경이 있는 곳이다. 호젓이 자리한 한옥에서 사람들이 창을 열어둔 채 차를 마신다. 장소가 풍기는 예술적 분위기가 더해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수연산방이 예술적 분위기를 풍기는 데에는 건축적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이유가 있다. 이곳은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인 이태준의 집이었다. 그는 김기림, 정지용 등과 함께 ‘구인회’라는 문학모임을 만들어 동인으로 활동했다. 그릇 하나도 산문집 ‘무서록’에서 ‘날카롭게 어여낸 여덟 모의 굽이 우뚝 자리 잡은 위에 엷고 우긋하고 매끄럽게 연잎처럼 자연스럽게 변두리가 훨쩍 피인 그릇이다’고 묘사하는 그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칭송받았다. 이런 작가의 분위기가 수연산방에 그대로 배어 있는 것이다.

이태준이란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건 그가 1946년 월북했기 때문이다. 월북 이후 그는 남쪽 고향에서 타향 사람보다 못한 ‘빨갱이’로 불렸다. 그렇다고 북쪽에 그의 이름이 알려져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정파 투쟁에 휘말려 숙청을 당한 그의 행적은 그곳에서도 지워졌다.

수연산방에 앉아 이태준을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태준과 유사한 시기에 서양화의 선구자로 한반도에 등장했던 변월룡(1916∼1990)이다.

변월룡의 1985년 작품 ‘어머니’. 변월룡은 학업 등의 이유로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평생 한으로 여겼다. 학고재 제공

#한국 근대 거장 탄생 100년의 신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근대 거장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세 개의 전시를 선보였다. 이중섭(1916~1956)과 유영국(1916~2002), 그리고 변월룡의 개인전이었다. 전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 중에서 모두가 낯설어한 이름이 있었다. 국민 화가 이중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과 달리 알려지지 않은 변월룡이었다.

변월룡은 1916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생의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보낸 고려인이다. 스베르들롭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 미술학교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예술아카데미(현 레핀 회화·조각·건축 예술대학)를 졸업했다. 미술에 재능을 보여 러시아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미술인들이 모이는 학교에 다닌 것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을 수석 졸업하며 곧 교수가 됐다.

변월룡의 이름이 낯선 건 그 이후의 활동 때문이다. 그는 1953년 부교수로 승진하며 북한 교육성 고문관으로 북한에 파견됐다. 평양미술대학의 고문 겸 학장으로 재직하며 학생뿐 아니라 교수진을 지도했다. 이렇게 2년여간 보낸 세월은 그의 이름을 한국 미술사에서 지워 버리게 했다. 북한에서도 귀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배척당했다고 하니 그는 한반도 미술사에서 잊힌 사람이 됐다.

변월룡은 한국 구상미술 역사의 공백을 메울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본에서 서양미술을 배워 온 사람들이 서양미술의 선구자였던 시절이다. 유럽에 속하는 러시아에서 서양화를 익힌 변월룡의 당대 영향력은 미술사 맥락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전후관계를 떠나 그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화가였다. 탄탄한 기초와 탁월한 표현력으로 그려낸 그림은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변월룡의 1963년 작품 ‘자화상’. 그가 유화로 그린 유일한 자화상으로 알려졌다. 학고재 제공

#혼란의 시대에 그린 ‘사람 그림’

변월룡은 혼란의 시대를 관통하는 삶을 살았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 6·25전쟁, 분단, 이념 대립 등이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 제2차 세계대전, 전체주의, 냉전, 개혁과 개방이 일어났다. 고려인인 그는 한국과 러시아의 경계에 서서 이 모든 것을 겪었다.

그는 북한에서 배척당한 뒤 한반도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러시아에 안착해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변월룡이 교수로 재직하던 레닌그라드 러시아 예술아카데미는 스탈린 통치 시절 시각예술 분야에서 이뤄진 엄격한 중앙통제의 모체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은 당성과 지도자를 찬미할 것을 요구받았다. 혁명적 투쟁을 묘사하거나 승리의 감정을 고취하는 내용을 그려야 했다.

변월룡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러시아 당국의 요구를 반영해 그림을 그렸다. 작가로서의 삶과 완벽히 결부되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공식 미술과는 별도로 자신만의 창작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풍경을 주제로 산이나 들, 바다 등을 그렸을 수도 있다. 그가 선택한 주제이자 대상은 사람이었다. 평생을 경계에 서 있는 소수자로 살았기에 사람의 소중함을 더 잘 아는 그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예술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 느껴진다.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초상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학의 동료 교수와 제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가족과 이웃 등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남겼다. 공적으로 주문을 받은 초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내밀한 관계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그림들이다.

1947년 변월룡이 레닌그라드 러시아 예술아카데미에서 졸업작품 심사를 받고 있는 모습. 왼쪽의 무리가 심사위원들이고 오른쪽에 홀로 서 있는 인물이 변월룡이다. 서양인들 사이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 변월룡의 당당한 태도가 인상 깊다. 학고재 제공

#영혼을 담아 그린 어머니의 초상

변월룡의 초상화를 쭉 늘어놓고 보면 입이 벌어진다. E. N. 파블로브스키와 표트르 벨로소프, 표트르 포민, 미하일 예카체리넨스키 등 러시아 당대 유명 예술인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들뿐 아니라 한국 위인의 모습도 보인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를 비롯해 화가 배운성, 문학수, 정관철도 있다. 그 외에 외과의사, 트랙터 운전사, 화부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인종 등의 구분 없이 그린 모습에서 그의 따듯한 마음이 보인다.

그중 가장 온기가 느껴지는 건 ‘어머니’(1985)다. 이 그림은 1945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추억하며 그린 유화다. 아카데미즘이 추구하는 높은 완성도를 보이지는 않지만 몇 번의 붓질로 마무리한 것이 담박하다. 그림 속 암갈색 장독이 한국의 정서를 드러낸다. 차분하게 칠해진 색이 뿜어내는 기운은 숭고하다.

그림의 우측 하단에는 한글로 ‘어머니’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어머니를 위해 적은 것이라고 한다. 변월룡의 아버지는 집을 나가 소식이 두절돼 어머니가 홀로 세 남매를 키웠다. 타지에 살며 그곳의 말을 모르던 어머니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이 고단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식을 키우는 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던 어머니의 꿋꿋한 인품이 포개어 모은 두 손과 다문 입술에서 느껴진다.

이 초상화를 그린 1985년, 변월룡은 건강 문제로 교직에서 물러났다. 그 이후 투병생활을 하며 그린 그림은 주로 유년의 기억과 고국의 자연 등을 소재로 한다. 한반도에서 잊힌 이름이 됐지만 그는 마음의 고향인 이곳을 잊지 않았던 듯하다. 꽃사슴을 자주 그렸는데 자신의 심경을 꽃사슴의 긴 목에 이입해 접경 너머의 고국으로 향하고 싶은 시선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20세기 한국 현대 미술사에는 그간 변월룡과 같이 사각지대에 머무른 작가들이 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 전시를 개막했다. 채색화가 정찬영(1906~1988)과 백윤문(1906~1979), 월북 화가 정종여(1914~1984)와 임군홍(1912~1979),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1918~1967)과 정규(1923~1971)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다. 친구와 전시장 방문계획을 세우며 차를 천천히 목으로 넘겼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은 수연산방에 앉아 떠올린 이름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읊어 보는 밤이다.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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