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사찰에서 30여년간 50대 지적장애인을 폭행하고 노동을 착취한 사실이 최근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장애인단체는 이와 관련 수사당국의 부실수사 문제를 지적하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10일 장애우권익연구소에 따르면 지적장애 3급인 A(53)씨는 1985년 서울 시내 한 절에 들어간 뒤 주지스님으로부터 노동력 착취, 폭행, 명의도용 등 피해를 당하다 2017년 12월에야 가까스로 탈출했다. A씨는 보통 오전 4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별다른 보수도 받지 못한 채 사찰 내 잡일을 도맡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주지스님이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 차는 등 폭행이 빈번하게 있었다는 게 장애인단체 측 설명이다.
또 이 사찰은 A씨 명의를 도용해 아파트 2채를 매매하고 계좌 49개를 개설해 수억원 규모 펀드 투자에 이용하기도 했다.
A씨 가족은 이와 관련 서울 노원경찰서, 서울북부고용노동지청, 서울북부지검 등에 수사를 요청했지만 주지스님의 폭행 12건에 대한 혐의만 법원에 넘겨져 벌금 500만원 약식명령이 내려졌을 뿐이었다. 주지스님 측은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인 최정규 변호사는 “노동청은 절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노사관계 문제로 보기 어렵다며 A씨 주장을 묵살했다”며 “검경도 강제근로나 명의도용 등에 대한 증거가 분명 있는데도 A씨가 제출한 서류상 기입된 적용 법조가 잘못됐단 부차적 이유로 해당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와 관련 이날 오전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찰에서 발생한 장애인 노동력착취·학대사건에 대한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A씨와 함께 탈출했다 다시 절로 돌려보내진 지적장애인 1명과 지적장애인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1명 등 총 2명이 아직까지 그 절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이들의 강제근로에 대한 즉각 수사와 분리조치를 요청한다”고도 밝혔다.
이 단체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주지스님에 대해 장애인복지법 위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부동산실명법 위반,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법 위반,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문제가 된 사찰이 소속된 조계종 측과도 만나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글·사진=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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