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 마지노선 이미 도달… 남은 시간 없다”
“저는요, ‘내 화법에 문제가 있나, 내가 신뢰가 안 가는 스타일인가, 심지어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이런 생각도 했어요.”
권원태(사진) 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기후센터 원장은 우리 사회의 ‘기후위기 불감증’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그간 수없이 많은 강연과 토론회에서 역설했지만, 본인의 메시지가 ‘강연장 밖’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답답함에서 나온 말이다.
권 원장은 1991년 기상연구소(현재 국립기상과학원)에 들어와 지난 28년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후전문가로 활동해왔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4차 보고서 때부터 2022년 완성될 6차 보고서까지 세 번 연속 주저자로 참여해오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채택된 ‘1.5도 보고서’의 보도에 무척 실망한 눈치였다. 1.5도 보고서를 채택하는 IPCC 총회가 인천 송도에서 열려 모처럼 기후변화 이슈가 주목받을 것 같았지만, 언론은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정말 왜 그렇게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뉴스를 보면 거의 다 정치, 경제잖아요. 요즘엔 미세먼지까지 이슈가 되면서 기후변화 그 자체 이야기는 더 찾기 어려워진 것 같아요. 영향력으로 따지면 기후변화야말로 인류의 생존이 달린 문젠데 아직도 오피니언 리더들은 경제성장, 그것도 대기업이 이끌어 온 그런 식의 성장을 최우선에 두는 것 같아요.”
1.5도 보고서는 ‘현재 속도로 온난화가 지속하면 2030년 이후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를 막으려면 전례 없는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게 요지다. 2030년까지 남은 시간은 11년. 권 원장은 ‘11년이나 남은 게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계적으로 합의된 이산화탄소 마지노선은 450ppm입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상당농도(CO2-eq)라는 게 있어요. 여러 온실가스의 농도를 지구온난화 효과를 기준으로 계산해 이산화탄소 농도로 환산한 값이에요. 이 상당농도는 지금 이미 450ppm이에요.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란 얘기죠.”
하지만 기후변화가 체감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사실 저도 1997∼1998년 이전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연구하다 보니까 제가 예상한 것보다 온도변화가 너무 심한 거예요. 기후변화가 일상생활에서 느끼기는 어려운 문제니까 관심도도 낮을 겁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학생들 학업부담 경감도 좋지만 이건 정말 우리 지구의 미래가 달린 문제잖아요.”
기후변화에 대한 제대로 된 학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20XX년 탄소배출 제로… 우린 목표 왜 못 세우나”
미국 원작을 리메이크해 방영 중인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환경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미국 드라마에선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 주인공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부장관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드라마 대사에도 나왔듯 ‘미세먼지 수치나 세는’ 약한 부처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안병옥(사진)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운동가이자 환경부차관(2017년 6월∼2018년 8월)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실제 환경부가 미칠 수 있는 힘의 범위가 제한적이라고 했다.
“제가 정부에서 일해보니 환경부가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한 20%밖에 안 되더군요. 나머지 80%는 다른 부처와 협의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때론 전투와 같을 때도 있습니다. 독일은 연방 환경부의 권한이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우리나라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갖고 있는) 재생에너지 사업도 환경부가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경제부처로 넘겼죠. 재생에너지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환경 문제로 다루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요. 대신 건설분야가 환경부 소관으로 있습니다.”
그는 10년 가까이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에서 공부하고 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영국은 얼마 전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와 뉴질랜드, 핀란드(2035년), 노르웨이(2030년)도 탄소 배출 제로를 추진 중이다. 벤츠, 도요타, 볼보 같은 자동차 제작사들도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 연도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저도 사실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유럽은 ‘2050년 ○○○’ 같은 장기계획을 잘 만들죠.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하고요. 우리는 ‘책임지지도 못할 거, 실행 여부도 모르는 걸 왜 세우느냐. 3∼5년 계획이라도 잘 세워라’ 이런 목소리가 커요. 정부 내에서만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요. 그게 한편 이해도 되는 게 유럽은 정권이 바뀌어도 연속성 있게 추진되는 정책이 많으니까 장기계획에 대한 신뢰가 있는데, 우리는 그런 바탕이 좀 부족하니까 그렇겠죠.”
그는 기후변화 논의가 과학의 영역에서 경제, 사회 전 분야로 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를 도덕적인 패러다임으로만 접근하면 절대 풀 수 없어요. 문제 해결을 통해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해야죠. 사실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이 그런 개념이었는데, 방향에 대한 논란도 있었고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측면이 있죠. 외국 기후변화 학회를 가면 자연과학자들만 오는 게 아닙니다. 공학과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 전 분야의 전문가들이 와 있어요. 기후변화는 경제 문제이자 인권 문제이고 또한 심리 문제입니다.”
◆“한국 위험 과소평가… 값싼 전기요금 재검토할 때”
홍종호(사진) 서울대 교수는 경제학자다. 그런데 그의 이력은 지속가능발전위원회부터 환경정의(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환경 분야에 방점이 찍혀있다. 얼마 전에는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기도 했다(최근에 사의를 표명했다). 말하자면, 그는 수요공급의 원리로 환경을 보는 환경경제학자다.
이에 걸맞게 그는 우리 사회가 기후변화에 무관심한 건 ‘높은 할인율’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가치를 미래가치로 환산할 때 이자를 덧붙이듯,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할 때는 할인율만큼을 뺀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미래 기후변화의 위험에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 현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2006년 니컬러스 스턴 런던정경대 교수 등이 영국 정부 의뢰를 받아 작성한 ‘스턴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할인율을 평균 1.4%로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4.5% 정도예요. 기후변화 위험을 낮게 평가하니까 대응책을 마련해도 어지간하면 기후변화를 막는 편익보다 비용이 큰 거예요. 과감하고 담대한 대응정책을 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는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에도 꽤 부정적이었다.
“워낙 글로벌한 이슈고, 남들이 적극 나선다면 묻어갈 수 있으니까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될 이유가 없죠.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편익은 같이 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경제학자라도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나서는 국가’를 기대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유럽은 왜 할인율을 낮게 잡는 걸까.
“그런 곳에서는 시민들이 먼저 들고일어납니다. ‘내연기관차 퇴출하라.’ ‘건축물의 단열을 강화하자.’ 이런 적극적인 여론이 형성돼 있는 거죠.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200여개 국가에 퍼질 수는 없겠죠. 그래서 파리협정 같은 국제적인 약속과 공조가 중요한 겁니다.”
그는 전기요금 인상과 과감한 에너지 전환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라고 강조했다.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낭비가 심하거나 절약 정신이 없어서 전기요금 인상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어르신들을 보면 그 반대죠. 문제는 우리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전기를 싸고 풍족하게 공급하는 게 최우선이었으니까 ‘전기요금은 저렴해야 하고, 에어컨은 추울 정도로 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이제는 정말 껄끄러웠던 이런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잠재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유럽과 북미 태양광 시장 점유율 1위를 우리나라 기업이 하고 있고, 재생에너지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준비가 돼 있다고 봐요. 재생에너지에 대한 잘못된 불안감이 많이 퍼진 상태인데, 정부가 끝장토론을 하는 심정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부산=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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