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열리는 한 전시회에 출품된 일본군 위안부를 모티브로 한 ‘평화의 소녀상’ 작품의 철거를 요구했다는 소식이 4일 전해졌다.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주독 일본 대사관은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베를린의 여성 예술가 전시관인 ‘게독’(GEDOK)에 공문을 보냈다.
일본 대사관은 이 공문에서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한국과 최종합의됐다”고 주장하면서 전시회에서 소녀상 작품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2일부터 시작된 ‘토이스 아 어스’(TOYS ARE US) 전시회에 소녀상 작품이 출품된 사실을 알고 미리 공문을 보낸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공문에서 “2015년 일본과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것은 2015년 양국 합의의 관점에서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은 양국 합의에 따른 약속을 안 지켰고, 일본은 모든 약속을 이행했다”며 “국제사회는 주의깊게 합의 이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합의를 이행하도록 계속 요구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21세기에 여성 인권을 위해 선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공문에서는 2015년 한·일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지원한 위안부 피해자의 수치 등이 자세히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이 공문을 전시관 측에 직접 전달해 항의한 데 이어 전시관 예산을 지원하는 독일 지방정부 등도 압박했다.
연합뉴스는 이 같은 일본 측의 공문 내용은 “한국 정부가 잘못된 행위를 했고, 국제사회가 이를 시정할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식으로 왜곡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전시된 소녀상은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작품으로 지난 1일 일본 최대의 국제 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도 출품됐다 사흘 만에 철거된 작품과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아이치 트리엔날에 평화의 소녀상 조형물이 출품된 데 대해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라며 전시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주독 일본 대사관의 공문에 대해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 페어반트(Korea Verband)의 한정화 대표는 “외교적 문제를 떠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약자인 여성의 문제인 데다, 예술작품 등으로 기리고 기억해야 할 문제”라며 “일본 측의 이런 반응에는 휴머니즘이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앞서도 일본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독일 곳곳에 세워졌거나 세워질 예정인 소녀상에 대한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데, 지난 6월에는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독일 교회의 날’ 기념 전시회에 소녀상이 전시되자 일본의 뒤셀도르프 총영사관 측이 연락해 철거를 요청했다.
지난해 1월에는 라벤스브뤼크의 옛 나치 강제 수용소 기념관에 전시된 ‘작은 소녀상’도 철거 압박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앞서 2017년 3월에는 남부도시 베젠트의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에 세워진 소녀상에 대해서도 철거를 요청했다.
결국 공원 측은 소녀상은 두되, 이를 설명한 비문을 철거했다.
한편 2015년 12월28일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핵심으로 하는 한 한일 정부의 전격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당시 합의 내용은 주로 ▲일본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들의 상처 치유 사업 ▲최종적·불가역적 문제 해결에 따라 상호 비난·비판 자제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의 적절한 해결 등이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화해와 치유 재단)은 한국 정부가 설립해 일본 측에 당시 기준 10억에(한화 약 97억원)을 출연하기로 했으며, 2016년 7월 설립됐다.
그러나 이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합의로 국내에서 큰 반발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2017년 5월 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6월 꾸린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는 그해 12월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 관련 단체를 설득해 해외에 소녀상 건립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이면 합의’를 했음을 밝혀냈다.
이에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28일 입장문을 내 박 정부에서 체결된 12·28 합의에 대해 “위안부 TF의 조사 결과 발표를 보면서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유감스럽지만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며 합의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같은해 11월22일 여성가족부는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추진된 화해·치유재단에 대한 해산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해 사실상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공식화했다.
해산 당시까지 위안부 할머니에게 34억원과 돌아가신 할머니 유족 등에게 44억원의 현금이 지급됐다.
정부는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을 포기하는 대신 그 금액을 정부 예비비로 편성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합의 무효화를 주장하는 우리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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