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치적 포석에서 비롯됐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한·일 무역갈등은 결과적으로 미국에도 부정적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중재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다.
정치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스콧 시맨 아시아연구실장은 14일(현지시간) 미 뉴저지주 포트리에서 열린 ‘한·일 무역전쟁의 과제’ 세미나에서 “이번 사태는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일본인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외교적 이슈로 분산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아베 정권의 목표는 선거라는 정치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맨 실장은 “일본 사람들도 그다지 아베 총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야당이 워낙 약하다 보니 아베 정권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것”이라며 “한·일 갈등은 아베 총리의 힘을 더욱 부각하는 이슈”라고 설명했다. 메인주립대 국제관계학 크리스틴 베카시 교수도 “아베 정권이 한국과의 비대칭적인 상호의존력(Interdependence)을 무기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의 악화는 미국에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번 기회를 파고들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내다봤다. 베카시 교수는 “미국의 개입이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한·일 모두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어느 한쪽의 편에 서야 한다는 리스크도 있다”고 말했다. 시맨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협상하는 것을 좋아하지, 다른 누구의 협상을 조율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온통 2020년 대선뿐인데, 대부분의 미국 유권자는 외교 이슈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설명했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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