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진행된 곳은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이다. 독립기념관에서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4년 이후 15년 만이다. 취임 후 매번 양복을 입었던 문 대통령은 이날 옅은 하늘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하얀색 한복을 입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함께 잘사는 나라’,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에는 시인 2명의 작품이 등장했다. 평소에도 문 대통령의 연설에 시(詩)가 자주 등장한다. 취임 첫 추석에는 대국민 인사말을 통해 이해인 수녀의 ‘달빛기도’를 낭송했고, 다음 해인 2018년 크리스마스에는 박노해 시인의 ‘그 겨울의 시’를 인용했다. 이번 경축사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인 심훈(1901∼1936)의 ‘그날이 오면’이 초반부에 실렸다. 소설 ‘상록수’로도 잘 알려진 인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계몽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을 인용했다. 이 부분은 문 대통령이 광복과 관련해 가장 좋아하는 시구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 초안 작업 과정에서 다른 시구를 주문했다고 한다. 광복 직후에 경제건설과 관련한 작품들이 있는지 찾아보라는 지시였다. 신동호 연설비서관은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6·25전쟁 때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작가 김기림(1908∼?)의 ‘새나라 송(頌)’을 발견했다.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 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리고 철판을 펴자/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가자”라는 부분을 경축사에 담았다. 이 가운데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는 문 대통령의 이번 경축사 핵심 키워드가 됐다.
경축사 속에 등장한 지역명 속에 숨겨진 이야기도 있다. 후반부에 나오는 러시아의 아무르강과 충남의 서산이 대표적이다. 아무르강은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오호츠크해로 흘러가는 강을 말한다. 문 대통령은 “농업을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강가에서 남과 북, 러시아의 농부들과 대규모 콩 농사를 짓고”라고 표현했다. 이곳은 러시아 콩의 46.1%를 생산하는 곳으로, 북한도 이 지역에 땅을 임대해 농사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관심을 갖던 곳이 하바롭스크 아무르지역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청년의 동생이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라며 아무르에서 생산된 콩을 소의 사료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서산’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1001마리 소 떼를 이끌고 방북을 했을 당시 소들을 키웠던 지역이다. 정 회장의 소 떼 방북은 금강산관광 사업 등 남북경협의 단초가 됐다. 신북방정책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로 뻗어 나가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상징적인 두 지역명으로 관통된 셈이다.
여야는 이날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논평에서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일깨우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손에 잡힐 듯이 구체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이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대통령의 경축사가 진행되는 동안 거의 박수를 치지 않았다”며 “제1야당 대표의 무례함과 협량함에 말문을 잃는다”고 말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말의 성찬으로 끝난 허무한 경축사”라며 “문재인정권 들어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각 정당은 이날 발표한 대일(對日) 메시지에서도 온도차를 보였다. 정의당 등은 일본 아베 정부를 규탄하며 사죄를 요구했고 보수 야당은 한·일관계 악화를 성토하며 외교적 노력을 강조했다.
김달중·이현미 기자 da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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